'AI 수학' 글로벌 열풍 부는데…한국은 고교 과정서 아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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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2부>
(1) '골다공증' 걸린 한국 수학교육
당장 내년부터 아무도 안 배워
(1) '골다공증' 걸린 한국 수학교육
당장 내년부터 아무도 안 배워
지난달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의원들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책임질 수학 (교육)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최 장관 후보자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재직시절) 동료 교수들과 가장 많이 걱정한 부분”이라며 “수학 교육이 잘 안 되면 국가 발전은 어렵다”고 답했다.
6일 교육계와 수학계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우려는 명백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고교 1학년에게 적용한 10차 개정 수학 교육과정에서 선형대수(행렬, 벡터)를 뺐다. 오병권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부장은 “선형대수는 AI의 ‘두뇌’인 알고리즘 작성과 빅데이터 처리에 가장 중요한 수학 분과”라며 “이공계 대학 수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행렬 이수 고교생은 2015년 54만8132명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의 17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 청구 자료와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행렬 이수 학생은 올해 1만179명(서울·경기 등 13개 시·도)에 불과하다. 작년 고1학생이 3학년이 되는 내년엔 ‘0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AI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는 미국 중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 주요국은 고교 수학에서 선형대수를 계속 다룬다. 나아가 미분과 적분 등 해석학, 확률·통계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보다 심도 있는 내용을 교육한다.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적용성이 큰 선형대수를 뺀 것은 학생들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미래의 기회를 박탈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학계 400여 년 난제를 푼 세계적 수학자로 유명하다.
정권 바뀔때마다 "어려운 건 빼"…韓 수학교육 '구멍 숭숭'
DJ 때부터 "학습부담 경감"…시민단체까지 '하향평준화' 요구
“한국 수학 교육은 ‘골다공증’에 걸렸다. 교육 내용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주저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내 수학 전문가 대부분의 공통된 견해다. 골다공증은 두서없이 내용을 빼거나 선택과목으로 조각조각 찢어 놓는 게 일상화된 수학 교육과정을 빗댄 말이다. 20여 년 전부터 ‘어려운 건 빼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수학 교육이 서서히 무너져왔다는 설명이다. 대한수학회장을 지낸 이향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무조건 내용을 빼고 페이지를 줄이는 게 정부의 지상목표가 됐다”며 “전반적으로 대학 신입생들의 수학 학력이 떨어져 수업이 굉장히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교육 양극화와 사교육 부채질
수학 교육 대원칙에 ‘학습부담 경감’이 처음 명시된 건 1997년 12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이다. 2002년 고1 신입생부터 적용됐다. 미분과 적분을 고교 필수과목에서 빼버린 것이 이때부터다. ‘대학 수업이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이후 교육과정에서 일부가 부활하긴 했지만 대세는 ‘미·적분 배제’로 굳어졌다. 빅데이터 시대에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수, 로그도 7차 교육과정을 기점으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누더기가 됐다.
2014년 고1부터 적용된 9차 교육과정(2009년 고시)에서는 행렬을 필수과목에서 뺐다. 지난해 고1부터 적용된 10차 교육과정에선 인문계와 자연계 구분 없이 행렬을 완전히 삭제했다. 벡터는 반쪽으로 쪼개 안 배워도 그만인 ‘진로선택’ 과목으로 편성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수학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를 제대로 길러낼 수 있는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학교육 해체’가 학생들의 부담을 경감시켰을까. 오히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학력 저하가 가속화됐다. 초·중·고생 1인당 수학 사교육비는 2016년 7만6000원에서 지난해 8만3000원으로 10%가량 증가했다. 문제 출제범위가 줄자 변별력을 높이려고 수능 출제 당국이 일명 ‘킬러 문제’를 내 사교육을 더 부채질한다는 분석이다.
수학교육 전문가인 이승훈 유원대 교수는 “현대 수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행렬과 벡터는 학원 또는 특수목적고 등에서 따로 배운다”며 “오히려 교육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안한 학부모의 심리를 이용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학 국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고2 ‘보통학력’ 미만자는 29.6%로 3년 전 19.7%에 비해 50%(9.9%포인트) 급증했다. 최저 수준인 기초학력도 못 갖춘 중3 학생은 지난해 11.1%로 3년 전(4.6%)보다 2.4배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기초학력 미달 고2 역시 5.5%에서 10.4%로 갑절이 됐다.
시민단체도 ‘따로 또 같이’ 수학 해체
수학교육 해체는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이뤄져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교육 억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한수학회에 ‘사교육을 유발하니 국내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를 없애라’고 공문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행렬이 처음 빠진 것도 이명박 정부 때다.
장정욱 단국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어떤 정권이든 학습 부담을 줄여 (표심을 얻는) 손쉬운 정치영역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수학 교육은 정치와 완전히 별개로 다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하향 평준화’ 요구가 나날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수학교육 몰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 교육위원회’는 “교육 적폐인 경쟁 교육체제를 청산하라”고 성명서를 내면서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등) ‘특권학교’ 전면 해체를 거론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평등교육 실현 전국학부모회 등 6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위원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편협한 열성적 시민운동가들이 수학교육 부실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큰 비극”이라고 한탄했다.
교육부의 인식은 전문가들, 통계와 천양지차다.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이상수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학생들의 수학 실력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싱가포르 고교수학은 한국 대학 수준
깊고 다양하게 가르치는 주요국
선진국의 고교 수학교육은 한국보다 ‘깊고 다양하게’ 가르친다. 대수학(정수론·선형대수 등), 해석학(미·적분 등), 기하학(벡터 등), 확률·통계 등 전 분야에 걸쳐서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별, 지역교육청, 학교별로 배우는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수학 교육이 한국보다 약하고 체계적이지 않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AP코스’에서 한국 고교생이 배우지 않는 테일러·매클로린 급수, 멱급수, 로피탈정리 등뿐 아니라 ‘대학 수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분방정식까지 배운다.
확률통계 부문에서도 회귀분석, 카이제곱분포, 단측·양측 검정, t분포, 모수 추정과 오차의 한계, 비편향성과 점추정 등 대학 수학 내용을 배운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생들에겐 수학 교육을 최소화한다. 마구잡이로 수학 교육과정을 축소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가량인 싱가포르 역시 고교 수학교육이 대학 못지않다. 행렬, 드 므와브르 정리, 벡터의 외적, 포아송분포, 삼각부등식, 미분방정식 등 한국 고교 수학엔 없는 내용을 배운다. 대한수학교육학회의 분석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한국의 고교 수학 내용을 모두 가르치면서 이런 내용도 교육한다. 한국이 양과 질 모든 부분에서 뒤지는 셈이다.
중국도 미국, 싱가포르 등처럼 한국 고교 수학이 다루지 않는 깊이 있는 내용을 가르친다. 지난해 교육과정을 새로 만들며 인공지능(AI) 기술과 연관된 데이터 분석, 수학적 모델링 과목까지 추가했다. 검인정 체제에 매여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붕어빵 교과서’와 달리 교과서도 모두 26권으로 한국(9권)의 약 세 배다.
일본 역시 한국 고교 수학 대부분 내용을 포함한다. 대수학 분야에서 잉여류와 n진법, 해석학에서 복소수의 극좌표와 극형식, 기하 영역에서 공간벡터, 확률통계 영역에서 사분위수와 범위 등 한국 (일반)고교 수학에 없는 내용을 가르친다. 공립학교 중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을 지정해 수학 및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SSH는 2017년 기준 203개에 달한다.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롭고 대학 교수가 직접 지도한다는 것이 한국의 과학고(영재고 제외)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호주 고교 수학은 한국보다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다. 학생들은 행렬, 가우스소거법, 오일러그래프, 역삼각함수의 미분, 고계도함수, 벡터함수의 미적분, 공간벡터, 베르누이분포, 미분방정식, 공학도구를 이용한 수치적분 등을 배운다. 영국 고교 수학엔 한국 고교 수학에 있는 집합과 명제, 공간도형의 위치관계 등이 빠져 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갈 학생은 상당한 수준까지 공부해야 한다. 행렬, 선형 프로그래밍, 극좌표, 2차미분방정식, 공간벡터, 상관관계와 회귀분석 등을 배워야 한다.
한국 교육부와 시민단체는 ‘나중에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되지 왜 미리 하냐’는 식이다. 김영욱 고려대 수학과 교수는 “평준화, 학습부담 경감 다 좋다고 쳐도 최소한 고교 때 기초를 접하게 하고 대학에서 심화 학습을 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고교 수학 교과과정으론 외국과의 경쟁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박종관/정의진 기자 ihs@hankyung.com
6일 교육계와 수학계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우려는 명백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고교 1학년에게 적용한 10차 개정 수학 교육과정에서 선형대수(행렬, 벡터)를 뺐다. 오병권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부장은 “선형대수는 AI의 ‘두뇌’인 알고리즘 작성과 빅데이터 처리에 가장 중요한 수학 분과”라며 “이공계 대학 수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행렬 이수 고교생은 2015년 54만8132명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의 17개 시·도교육청 정보공개 청구 자료와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행렬 이수 학생은 올해 1만179명(서울·경기 등 13개 시·도)에 불과하다. 작년 고1학생이 3학년이 되는 내년엔 ‘0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AI 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는 미국 중국 일본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 주요국은 고교 수학에서 선형대수를 계속 다룬다. 나아가 미분과 적분 등 해석학, 확률·통계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보다 심도 있는 내용을 교육한다.
김민형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적용성이 큰 선형대수를 뺀 것은 학생들이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많은 미래의 기회를 박탈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학계 400여 년 난제를 푼 세계적 수학자로 유명하다.
정권 바뀔때마다 "어려운 건 빼"…韓 수학교육 '구멍 숭숭'
DJ 때부터 "학습부담 경감"…시민단체까지 '하향평준화' 요구
“한국 수학 교육은 ‘골다공증’에 걸렸다. 교육 내용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주저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내 수학 전문가 대부분의 공통된 견해다. 골다공증은 두서없이 내용을 빼거나 선택과목으로 조각조각 찢어 놓는 게 일상화된 수학 교육과정을 빗댄 말이다. 20여 년 전부터 ‘어려운 건 빼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수학 교육이 서서히 무너져왔다는 설명이다. 대한수학회장을 지낸 이향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무조건 내용을 빼고 페이지를 줄이는 게 정부의 지상목표가 됐다”며 “전반적으로 대학 신입생들의 수학 학력이 떨어져 수업이 굉장히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교육 양극화와 사교육 부채질
수학 교육 대원칙에 ‘학습부담 경감’이 처음 명시된 건 1997년 12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이다. 2002년 고1 신입생부터 적용됐다. 미분과 적분을 고교 필수과목에서 빼버린 것이 이때부터다. ‘대학 수업이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이후 교육과정에서 일부가 부활하긴 했지만 대세는 ‘미·적분 배제’로 굳어졌다. 빅데이터 시대에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지수, 로그도 7차 교육과정을 기점으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누더기가 됐다.
2014년 고1부터 적용된 9차 교육과정(2009년 고시)에서는 행렬을 필수과목에서 뺐다. 지난해 고1부터 적용된 10차 교육과정에선 인문계와 자연계 구분 없이 행렬을 완전히 삭제했다. 벡터는 반쪽으로 쪼개 안 배워도 그만인 ‘진로선택’ 과목으로 편성했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수학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를 제대로 길러낼 수 있는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수학교육 해체’가 학생들의 부담을 경감시켰을까. 오히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학력 저하가 가속화됐다. 초·중·고생 1인당 수학 사교육비는 2016년 7만6000원에서 지난해 8만3000원으로 10%가량 증가했다. 문제 출제범위가 줄자 변별력을 높이려고 수능 출제 당국이 일명 ‘킬러 문제’를 내 사교육을 더 부채질한다는 분석이다.
수학교육 전문가인 이승훈 유원대 교수는 “현대 수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행렬과 벡터는 학원 또는 특수목적고 등에서 따로 배운다”며 “오히려 교육 격차가 벌어지면서 (불안한 학부모의 심리를 이용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학 국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고2 ‘보통학력’ 미만자는 29.6%로 3년 전 19.7%에 비해 50%(9.9%포인트) 급증했다. 최저 수준인 기초학력도 못 갖춘 중3 학생은 지난해 11.1%로 3년 전(4.6%)보다 2.4배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기초학력 미달 고2 역시 5.5%에서 10.4%로 갑절이 됐다.
시민단체도 ‘따로 또 같이’ 수학 해체
수학교육 해체는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이뤄져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교육 억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한수학회에 ‘사교육을 유발하니 국내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를 없애라’고 공문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행렬이 처음 빠진 것도 이명박 정부 때다.
장정욱 단국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어떤 정권이든 학습 부담을 줄여 (표심을 얻는) 손쉬운 정치영역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수학 교육은 정치와 완전히 별개로 다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하향 평준화’ 요구가 나날이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수학교육 몰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사회적 교육위원회’는 “교육 적폐인 경쟁 교육체제를 청산하라”고 성명서를 내면서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등) ‘특권학교’ 전면 해체를 거론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평등교육 실현 전국학부모회 등 6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위원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편협한 열성적 시민운동가들이 수학교육 부실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큰 비극”이라고 한탄했다.
교육부의 인식은 전문가들, 통계와 천양지차다.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이상수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학생들의 수학 실력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싱가포르 고교수학은 한국 대학 수준
깊고 다양하게 가르치는 주요국
선진국의 고교 수학교육은 한국보다 ‘깊고 다양하게’ 가르친다. 대수학(정수론·선형대수 등), 해석학(미·적분 등), 기하학(벡터 등), 확률·통계 등 전 분야에 걸쳐서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주별, 지역교육청, 학교별로 배우는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이 때문에 수학 교육이 한국보다 약하고 체계적이지 않다는 편견이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AP코스’에서 한국 고교생이 배우지 않는 테일러·매클로린 급수, 멱급수, 로피탈정리 등뿐 아니라 ‘대학 수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분방정식까지 배운다.
확률통계 부문에서도 회귀분석, 카이제곱분포, 단측·양측 검정, t분포, 모수 추정과 오차의 한계, 비편향성과 점추정 등 대학 수학 내용을 배운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생들에겐 수학 교육을 최소화한다. 마구잡이로 수학 교육과정을 축소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가량인 싱가포르 역시 고교 수학교육이 대학 못지않다. 행렬, 드 므와브르 정리, 벡터의 외적, 포아송분포, 삼각부등식, 미분방정식 등 한국 고교 수학엔 없는 내용을 배운다. 대한수학교육학회의 분석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한국의 고교 수학 내용을 모두 가르치면서 이런 내용도 교육한다. 한국이 양과 질 모든 부분에서 뒤지는 셈이다.
중국도 미국, 싱가포르 등처럼 한국 고교 수학이 다루지 않는 깊이 있는 내용을 가르친다. 지난해 교육과정을 새로 만들며 인공지능(AI) 기술과 연관된 데이터 분석, 수학적 모델링 과목까지 추가했다. 검인정 체제에 매여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붕어빵 교과서’와 달리 교과서도 모두 26권으로 한국(9권)의 약 세 배다.
일본 역시 한국 고교 수학 대부분 내용을 포함한다. 대수학 분야에서 잉여류와 n진법, 해석학에서 복소수의 극좌표와 극형식, 기하 영역에서 공간벡터, 확률통계 영역에서 사분위수와 범위 등 한국 (일반)고교 수학에 없는 내용을 가르친다. 공립학교 중 ‘슈퍼 사이언스 하이스쿨(SSH)’을 지정해 수학 및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SSH는 2017년 기준 203개에 달한다. 교육과정 편성이 자유롭고 대학 교수가 직접 지도한다는 것이 한국의 과학고(영재고 제외)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호주 고교 수학은 한국보다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다. 학생들은 행렬, 가우스소거법, 오일러그래프, 역삼각함수의 미분, 고계도함수, 벡터함수의 미적분, 공간벡터, 베르누이분포, 미분방정식, 공학도구를 이용한 수치적분 등을 배운다. 영국 고교 수학엔 한국 고교 수학에 있는 집합과 명제, 공간도형의 위치관계 등이 빠져 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학에 갈 학생은 상당한 수준까지 공부해야 한다. 행렬, 선형 프로그래밍, 극좌표, 2차미분방정식, 공간벡터, 상관관계와 회귀분석 등을 배워야 한다.
한국 교육부와 시민단체는 ‘나중에 필요한 사람만 배우면 되지 왜 미리 하냐’는 식이다. 김영욱 고려대 수학과 교수는 “평준화, 학습부담 경감 다 좋다고 쳐도 최소한 고교 때 기초를 접하게 하고 대학에서 심화 학습을 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고교 수학 교과과정으론 외국과의 경쟁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박종관/정의진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