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잠자는 시간' 만든건 왜?가 없는 붕어빵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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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세상을 바꾼다 <2부>
(2) 문제풀이 수학으론 미래 없다
문제풀이만 지루하게 반복
전문가 "교과서 전면 개편을"
(2) 문제풀이 수학으론 미래 없다
문제풀이만 지루하게 반복
전문가 "교과서 전면 개편을"
지난 4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시간. 20여 명의 학생 가운데 절반가량이 엎드려 있었다. 한 학생은 아예 담요를 덮은 채 잠이 들었다. 이들은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넘어 하교 시간이 되자 이들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대치동 학원가. 한 수학학원 입구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학생들이 건물 밖까지 줄을 섰다.
학원 가기 전 ‘잠자는 시간’으로 전락한 수학 교육 현장이다. 전문가들은 수학 공교육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로 ‘붕어빵 검정(檢定)교과서’를 꼽았다. ‘개념 주입-예제 풀이-문제 풀이’ 3단계로 반복되는 교과서 구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교과서 집필 과정에 참여하긴 하지만 실질적 역할은 별로 없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검정 기준이 너무 강해 교과서에 새로운 걸 담기 어려운 구조”라며 “(수학 교육 방향과 관련해) 전문가 의견을 제시하면 정부는 ‘본인들 밥그릇 싸움’이라고 묵살해버리니 당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대부분은 “문제집과 다름 없는 수학 교과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과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안성진)은 교육부와 마찬가지로 “수학 교과서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재단은 수학 교과서 검정 및 편찬 업무를 맡고 있다.
수학교육, 50년 전과 똑같아…개념주입→문제풀이 '무한반복'
주입식 교과서가 흥미 잃게 해…초등 4~6학년때 1차 수포자 발생
지난해 고1부터 배우는 10차 교육과정 고교 수학 출판사는 교학사, 지학사, 천재교육, 좋은책신사고, 비상교육 등 9개다. 9개 교과서의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문제집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문제 제시에 집중돼 있다. 개념 설명이 있긴 하지만 주로 ‘도구적 쓰임새’에 그친다.
한 출판사의 ‘미·적분’ 교과서 미분법 단원 도입부가 좋은 예다. ‘미분은 자연과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고 짧게 언급한 뒤 곧장 지수·로그함수의 미분으로 들어간다. 다른 출판사의 ‘수학1’ 교과서는 삼각함수를 설명하면서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주기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삼각함수를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미분이나 해당 함수가 등장한 역사적, 사상적 설명 등은 없다.
한 중학교 수학 교과서는 기하 단원에서 “맞꼭지각이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유클리드 기하학 측면에서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세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마주보는 각을 맞꼭지각이라고 부르며 크기는 서로 같다’는 공허한 답변을 붙이고 바로 문제풀이를 시작한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교과서가 50년 전과 다를 게 없다”며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게 된 근본적 원인은 주입식 교과서”라고 주장했다.
‘왜?’는 없고 단순계산 치중
‘1차 수포자(수학 포기자)’ 발생 시점은 국정교과서로 배우는 초등학교 4~6학년 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분수와 소수 등의 사칙연산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이 일찍 질린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고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후 ‘스타 강사’로 활동했던 박승동 메가스터디교육 부사장은 “뒤죽박죽이 된 수학 교육과정 때문에 대학생들이 수업을 못 따라가니 고교 수학을 다시 배우는 촌극이 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로 가득찬 교과서와 교사들의 직무유기, 남들보다 어떻게든 많이 배워야 한다는 부모들의 조급함이 어우러져 수포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화재 경영혁신실장 등을 지낸 인공지능(AI) 수학교육 전문가 조봉한 이쿠얼키(깨봉수학) 대표는 “문제풀이 단순 반복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한국 수학 교육은 굉장히 왜곡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은 계산기나 프로그램 등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단순 계산을 없애는 추세”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은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지하주차장, 인터넷 데이터, 설문조사 등에 익숙한 요즘 초등학생들은 음수와 지수, 확률과 통계 개념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싱가포르 호주 영국 등은 분수와 소수 계산을 중학교 이후에 배운다. 대신 유리수와 무리수, 함수, 수열, 모집단과 표본 등을 한국보다 먼저 가르친다.
‘역사와 철학’으로 가르쳐야
수포자 증가 추이는 여실하다. 지난해 ‘수학 보통학력 미만’ 고2 학생은 29.6%로 3년 전(19.7%)보다 급증했다. 보통학력 미만 중3 역시 같은 기간 33.8%에서 37.7%로 많아졌다. 고1 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학업성취도평가(PISA) 한국 순위는 2015년 6~9위로 3년 전(2012년 3~5위)보다 낮아졌다. 중국이 2~4위, 일본은 5~6위로 한국을 제쳤다.
수학 교과서 개편과 함께 입시 제도를 손보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향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문제풀이 교육 행태를 바꾸기 위해선 ‘결국 문제풀이’만 유도하는 수능 평가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바칼로레아(서술형 프랑스 대입시험)처럼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학공부의 재구성> 등을 펴낸 대안수학교육강사 민경우 씨는 “데카르트 등 서양 모든 수학자들은 철학자”라며 “수학 원리가 태동한 이유 등 역사와 철학을 많이 가르쳐야 수포자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진/박종관/이해성 기자 justjin@hankyung.com
학원 가기 전 ‘잠자는 시간’으로 전락한 수학 교육 현장이다. 전문가들은 수학 공교육이 무너진 원인 중 하나로 ‘붕어빵 검정(檢定)교과서’를 꼽았다. ‘개념 주입-예제 풀이-문제 풀이’ 3단계로 반복되는 교과서 구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교과서 집필 과정에 참여하긴 하지만 실질적 역할은 별로 없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검정 기준이 너무 강해 교과서에 새로운 걸 담기 어려운 구조”라며 “(수학 교육 방향과 관련해) 전문가 의견을 제시하면 정부는 ‘본인들 밥그릇 싸움’이라고 묵살해버리니 당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대부분은 “문제집과 다름 없는 수학 교과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과 달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안성진)은 교육부와 마찬가지로 “수학 교과서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재단은 수학 교과서 검정 및 편찬 업무를 맡고 있다.
수학교육, 50년 전과 똑같아…개념주입→문제풀이 '무한반복'
주입식 교과서가 흥미 잃게 해…초등 4~6학년때 1차 수포자 발생
지난해 고1부터 배우는 10차 교육과정 고교 수학 출판사는 교학사, 지학사, 천재교육, 좋은책신사고, 비상교육 등 9개다. 9개 교과서의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문제집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문제 제시에 집중돼 있다. 개념 설명이 있긴 하지만 주로 ‘도구적 쓰임새’에 그친다.
한 출판사의 ‘미·적분’ 교과서 미분법 단원 도입부가 좋은 예다. ‘미분은 자연과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고 짧게 언급한 뒤 곧장 지수·로그함수의 미분으로 들어간다. 다른 출판사의 ‘수학1’ 교과서는 삼각함수를 설명하면서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주기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삼각함수를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미분이나 해당 함수가 등장한 역사적, 사상적 설명 등은 없다.
한 중학교 수학 교과서는 기하 단원에서 “맞꼭지각이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유클리드 기하학 측면에서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상세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마주보는 각을 맞꼭지각이라고 부르며 크기는 서로 같다’는 공허한 답변을 붙이고 바로 문제풀이를 시작한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교과서가 50년 전과 다를 게 없다”며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게 된 근본적 원인은 주입식 교과서”라고 주장했다.
‘왜?’는 없고 단순계산 치중
‘1차 수포자(수학 포기자)’ 발생 시점은 국정교과서로 배우는 초등학교 4~6학년 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분수와 소수 등의 사칙연산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이 일찍 질린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고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후 ‘스타 강사’로 활동했던 박승동 메가스터디교육 부사장은 “뒤죽박죽이 된 수학 교육과정 때문에 대학생들이 수업을 못 따라가니 고교 수학을 다시 배우는 촌극이 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로 가득찬 교과서와 교사들의 직무유기, 남들보다 어떻게든 많이 배워야 한다는 부모들의 조급함이 어우러져 수포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화재 경영혁신실장 등을 지낸 인공지능(AI) 수학교육 전문가 조봉한 이쿠얼키(깨봉수학) 대표는 “문제풀이 단순 반복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한국 수학 교육은 굉장히 왜곡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은 계산기나 프로그램 등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단순 계산을 없애는 추세”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은 기계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지하주차장, 인터넷 데이터, 설문조사 등에 익숙한 요즘 초등학생들은 음수와 지수, 확률과 통계 개념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싱가포르 호주 영국 등은 분수와 소수 계산을 중학교 이후에 배운다. 대신 유리수와 무리수, 함수, 수열, 모집단과 표본 등을 한국보다 먼저 가르친다.
‘역사와 철학’으로 가르쳐야
수포자 증가 추이는 여실하다. 지난해 ‘수학 보통학력 미만’ 고2 학생은 29.6%로 3년 전(19.7%)보다 급증했다. 보통학력 미만 중3 역시 같은 기간 33.8%에서 37.7%로 많아졌다. 고1 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학업성취도평가(PISA) 한국 순위는 2015년 6~9위로 3년 전(2012년 3~5위)보다 낮아졌다. 중국이 2~4위, 일본은 5~6위로 한국을 제쳤다.
수학 교과서 개편과 함께 입시 제도를 손보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향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문제풀이 교육 행태를 바꾸기 위해선 ‘결국 문제풀이’만 유도하는 수능 평가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바칼로레아(서술형 프랑스 대입시험)처럼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학공부의 재구성> 등을 펴낸 대안수학교육강사 민경우 씨는 “데카르트 등 서양 모든 수학자들은 철학자”라며 “수학 원리가 태동한 이유 등 역사와 철학을 많이 가르쳐야 수포자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진/박종관/이해성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