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실무협상 결렬은 예견된 수순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순탄하게 전개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웠거니와 양측 ‘동상이몽’의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북한은 협상을 지렛대 삼아 경제제재에서 탈피하려다 맘에 안 드니 판을 엎은 것이다. 미국도 당장 성과를 내기보다는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북한이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도발을 못 하게끔 막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이번 ‘스톡홀름 노딜(no deal)’로 북한 비핵화는 다시 미궁에 빠졌다. 2년 전 서로 ‘로켓맨’, ‘노망난 늙은이(dotard)’ 등 가시돋친 설전을 주고받던 수준까진 아니어도, 하노이 회담 이전으로 후퇴한 모양새다. 협상이 성과 없이 결렬됐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성명문이 역설적으로 그들이 협상에 임하는 전략·전술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체제 보장과 제재 완화에 올인해 온 북한이 협상을 완전히 깰 의사는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고 미국에 요구했다는 것은 제재로 인한 경제난이 심각함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처럼 북한은 미국 대선 일정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이용해 미국의 ‘통 큰 양보’를 기대했을 것이다. 북한이 요구한 ‘새 계산법’은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어떻게든 회피하면서 제재 완화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단계적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석탄 섬유 등의 한시적 제재완화를 제시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북한으로선 기대가 컸던 만큼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게 결렬 배경이란 분석이다. 북한 측 협상대표가 미국을 향해 “빈손으로 협상에 나왔다”고 비난한 데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이 ‘핵과 ICBM 발사 실험’ 운운하며 협박한 것도 ‘비핵화 운전대는 우리가 쥐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신호로 해석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하면 추파를 던졌다가 걷어차기를 반복하고, 수시로 도발을 곁들이는 게 전형적인 그들의 전술이다. 이런 ‘협상 쇼’로 시간을 벌고, 얻을 것을 얻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안면 몰수한다. 지금 전개되는 비핵화 논의도 시간만 끌고 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오죽하면 북한은 비핵화 ‘하는 척’, 트럼프 대통령은 ‘믿는 척’한다는 얘기가 회자되겠는가.

우리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트럼프가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북한과 전혀 예상밖의 합의를 하는 경우다. 한·미 훈련 중단 등을 섣불리 약속할 경우 자칫 한국 안보만 무장해제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선 비핵화’라는 대전제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 판국에 DMZ(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구상이나 김정은의 내달 답방을 기대하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거니와 공허하다. 이제 정부도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다. 북한과 대화를 할 때 하더라도 도발에는 단호히 대처하고, 비핵화 원칙에 추호도 어긋날 수 없음을 강력히 천명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