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조작된 죽음'…가혹행위 덮고 "개인문제로 극단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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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미공개 사건…'내성적 성격' 등 개인 탓으로 돌려
당시 수사관들, 은폐·축소 급급…"어차피 순직처리 안되고 부대만 불이익" '군복무 부적응', '빈곤한 가정 형편', '내성적 성격'….
과거 군복무 시절 부대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일부 사건의 자살 동기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실상을 밝히기 전까지 이처럼 '개인적 사유'로 조작돼 있었다.
진상규명위는 지난달 25일 출범 1년간의 실적을 공개하며 703건의 진상규명 요청 사건 중 13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8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위원회가 내용을 공개한 사건 외에도 개인 문제가 아닌 부대 내 부조리로 발생한 자살사건이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당시 군 당국은 이들의 사망 원인을 개인 신변에 관한 문제로 돌렸으나 상급자 등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우려한 의도적 은폐·축소였다.
◇ 진짜 원인은 가혹행위·인격모독…'빈곤한 가정형편' 등 엉뚱한 결론
1997년 3월 18일 오전 4시30분께 임모 일병은 탄약고 경계근무를 마친 뒤 불침번 근무자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내무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소속 중대 보급창고 안에서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인은 두부 관통상이었다.
당시 군 당국은 임 일병이 아버지의 지병과 업무 미숙에 대한 부담감으로 군 복무에 부적응을 겪다 신변을 비관해 이같은 선택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유족들은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진상규명위에 "유서가 없어 타살이나 사고사일 가능성이 있고, 자살이라면 군이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니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군 수사 결과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임 일병은 소속 부대 행정보급관에게 지속적인 인격 모독성 폭언과 욕설을 들었고, 또 다른 간부에게는 성추행을 당했다.
탄약관리병으로 전입됐음에도 보급품 재고 관리 등을 담당하는 보급 업무를 겸직했고, 주야간 탄약고 경계근무와 내무반 불침번 근무 등 과중한 업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0년 총기로 목숨을 끊은 김모 이병 사건도 비슷했다.
당시 군 당국은 '빈곤한 가정형편과 군 복무 염증으로 자해해 사망했다'고 했지만,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김 이병은 부대 내 만연했던 구타·폭언 등 가혹행위로 항상 극도의 긴장과 불안, 두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일명 '말뚝 근무' 등 업무 과중에도 시달렸다.
부대 간부들은 부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전입 신병이었던 김 이병에 대한 관리도 부실했다고 진상규명위는 판단했다.
유사 사례는 이뿐 아니었다.
1998년 부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안모 일병은 부대를 옮긴 후 선임병에게 구타와 폭언을 당했고, 하루 14시간 이상 근무에 시달려 "전에 근무하던 부대로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6년 총기로 목숨을 끊은 윤모 하사는 상급자에게 구타·폭언 등을 당했고, 2004년 부대에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김모 이병은 선임병들의 속옷을 빨고 총기와 방독면을 대신 관리해야 했으며 암기 강요와 가혹행위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사망을 두고 당시 군 당국은 대부분 '훈련 부담감', '불우한 가정환경 고민', '내성적 성격' 등 개인 차원으로 원인을 돌렸다.
진상규명위는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결론 지었다.
◇ 은폐·축소 수사…"순직 처리도 안되는데 부대에 피해만"
군 당국의 이같은 수사 결과는 의도적 은폐·축소였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규명위는 군 당국이 어떤 경위로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확인하고자 가능한 범위에서 관련자 조사도 거쳤다.
앞서 소개된 사건 가운데서는 당시 수사를 담당한 헌병대 수사관의 소재가 파악되고 조사가 가능했던 안모 일병·김모 이병 건의 수사관을 조사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당시 자살이나 타살은 순직 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를 깊이 하지 않았고, 이런 사건을 너무 깊이 파고들면 해당 부대 지휘관과 사건 관련자 등이 처벌 등 불이익을 당해서 그랬다"며 "어차피 죽은 이들은 순직도 인정되지 않는데 계속 군 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은폐·축소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까지만 해도 사망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자살·타살·사고사 등 '진상규명 불명자'는 순직 심사에 오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순직 심사를 청구하지 못했다.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 진상규명 불명자의 사망이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등 공무와 관련성이 있는 이유라고 인정하면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군인사법 시행령의 사망 분류 기준을 바꿨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시행됐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지금은 군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유가족이나 외부 인사가 수사를 직접 참관하는 등 방식이 바뀌었고, 위원회의 자료 요구에도 군이 적극적으로 응한다"며 "하지만 과거 군 당국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왜 죽었는지 진실을 조사해달라'는 유족들이 많다.
국가에서 불러 군 복무를 하다 죽은 이들에 대해 최소한 죽음의 진실은 알려주는 것이 국가의 도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당시 수사관들, 은폐·축소 급급…"어차피 순직처리 안되고 부대만 불이익" '군복무 부적응', '빈곤한 가정 형편', '내성적 성격'….
과거 군복무 시절 부대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일부 사건의 자살 동기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실상을 밝히기 전까지 이처럼 '개인적 사유'로 조작돼 있었다.
진상규명위는 지난달 25일 출범 1년간의 실적을 공개하며 703건의 진상규명 요청 사건 중 13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8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위원회가 내용을 공개한 사건 외에도 개인 문제가 아닌 부대 내 부조리로 발생한 자살사건이 다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당시 군 당국은 이들의 사망 원인을 개인 신변에 관한 문제로 돌렸으나 상급자 등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우려한 의도적 은폐·축소였다.
◇ 진짜 원인은 가혹행위·인격모독…'빈곤한 가정형편' 등 엉뚱한 결론
1997년 3월 18일 오전 4시30분께 임모 일병은 탄약고 경계근무를 마친 뒤 불침번 근무자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내무반 밖으로 나갔다.
그는 소속 중대 보급창고 안에서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인은 두부 관통상이었다.
당시 군 당국은 임 일병이 아버지의 지병과 업무 미숙에 대한 부담감으로 군 복무에 부적응을 겪다 신변을 비관해 이같은 선택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유족들은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진상규명위에 "유서가 없어 타살이나 사고사일 가능성이 있고, 자살이라면 군이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니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군 수사 결과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임 일병은 소속 부대 행정보급관에게 지속적인 인격 모독성 폭언과 욕설을 들었고, 또 다른 간부에게는 성추행을 당했다.
탄약관리병으로 전입됐음에도 보급품 재고 관리 등을 담당하는 보급 업무를 겸직했고, 주야간 탄약고 경계근무와 내무반 불침번 근무 등 과중한 업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0년 총기로 목숨을 끊은 김모 이병 사건도 비슷했다.
당시 군 당국은 '빈곤한 가정형편과 군 복무 염증으로 자해해 사망했다'고 했지만,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김 이병은 부대 내 만연했던 구타·폭언 등 가혹행위로 항상 극도의 긴장과 불안, 두려움을 느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일명 '말뚝 근무' 등 업무 과중에도 시달렸다.
부대 간부들은 부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전입 신병이었던 김 이병에 대한 관리도 부실했다고 진상규명위는 판단했다.
유사 사례는 이뿐 아니었다.
1998년 부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안모 일병은 부대를 옮긴 후 선임병에게 구타와 폭언을 당했고, 하루 14시간 이상 근무에 시달려 "전에 근무하던 부대로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6년 총기로 목숨을 끊은 윤모 하사는 상급자에게 구타·폭언 등을 당했고, 2004년 부대에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김모 이병은 선임병들의 속옷을 빨고 총기와 방독면을 대신 관리해야 했으며 암기 강요와 가혹행위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사망을 두고 당시 군 당국은 대부분 '훈련 부담감', '불우한 가정환경 고민', '내성적 성격' 등 개인 차원으로 원인을 돌렸다.
진상규명위는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결론 지었다.
◇ 은폐·축소 수사…"순직 처리도 안되는데 부대에 피해만"
군 당국의 이같은 수사 결과는 의도적 은폐·축소였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규명위는 군 당국이 어떤 경위로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확인하고자 가능한 범위에서 관련자 조사도 거쳤다.
앞서 소개된 사건 가운데서는 당시 수사를 담당한 헌병대 수사관의 소재가 파악되고 조사가 가능했던 안모 일병·김모 이병 건의 수사관을 조사했다고 한다.
수사관들은 "당시 자살이나 타살은 순직 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를 깊이 하지 않았고, 이런 사건을 너무 깊이 파고들면 해당 부대 지휘관과 사건 관련자 등이 처벌 등 불이익을 당해서 그랬다"며 "어차피 죽은 이들은 순직도 인정되지 않는데 계속 군 생활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은폐·축소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까지만 해도 사망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자살·타살·사고사 등 '진상규명 불명자'는 순직 심사에 오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순직 심사를 청구하지 못했다.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 진상규명 불명자의 사망이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등 공무와 관련성이 있는 이유라고 인정하면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군인사법 시행령의 사망 분류 기준을 바꿨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시행됐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지금은 군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유가족이나 외부 인사가 수사를 직접 참관하는 등 방식이 바뀌었고, 위원회의 자료 요구에도 군이 적극적으로 응한다"며 "하지만 과거 군 당국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고 '왜 죽었는지 진실을 조사해달라'는 유족들이 많다.
국가에서 불러 군 복무를 하다 죽은 이들에 대해 최소한 죽음의 진실은 알려주는 것이 국가의 도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