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를 무역·안보戰으로 돌려
日 참의원 선거·韓 총선 노린 것"
민간 싱크탱크 ‘FROM100’(대표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과 한국경제신문사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에서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체제 위기에 직면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발표한 오코노기 교수는 “한국과 일본 정부는 역사 문제를 무역 문제로, 또다시 안보 문제로 확전시켰다”며 “계속해서 수(手)를 잘못 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두 나라 갈등 국면에서 강력한 변수는 올해 말로 예상되는 일본 참의원 선거와 내년 4월 한국 총선거”라며 “선거 때는 ‘외부 공격에 우리가 맞대응하고 있다’는 선전이 여권에 유리한 만큼 한·일 정부가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 연세대 객원교수, 동서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등을 지낸 오코노기 교수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한국 전문가다. 양국 정·재계, 언론계, 학계 인사 50여 명이 참여한 올해 한·일포럼에선 일본 측 의장을 맡았다. 작년 출간한 저서 <한반도 분단의 기원>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어판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한·일 갈등을 타개할 해법으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을 제안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부르고 있고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로 맞대응해 협상 여력이 사라졌다”며 “중재위 등 제3자에 맡기는 게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식민지 배상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인식을 감안할 때 국제사법재판소에 과거사 문제를 가져가도 한국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며 “아마도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인도적 구제는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여한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한·일 청구권 협정을 건축에 비유하자면 지반을 단단하게 다지지 않은 채 건물을 올린 것”이라며 “불완전한 청구권 협정에다 일본 내 정치역학 등 다양한 변수가 지금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에 아베 신조 총리만 바뀌면 일본이 바뀔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이뤄져온 일본 정부의 식민지 배상 노력을 한국이 인정해주는 대신 식민지 폭력성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명문화하는 등 ‘1965년 체제의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게 남 교수의 조언이다.
한·일 간 역사 갈등이 통상·무역 문제로 확전될 수 있다는 사실상의 경고가 4년 전 있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은 “2015년 한·일 통화 스와프 연장 종료는 일본이 한국에 가한 일종의 경제 제재였다”며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