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언의 이슈프리즘] 무너진 신뢰 기반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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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언 편집국 부국장
어제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결국 사퇴했다. 그 개인적으로도 타격을 입었고, 사회적으로도 숱한 생채기를 남겼다. 상식과 통념, 일반 사회규범에 대한 엄청난 인식 차이를 확인한 많은 국민은 그동안 절망했다.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진영 간 너무나 큰 간극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간극을 조금도 좁히기 어렵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정파적 견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런저런 갈등과 대립도 어느 때나 있었다. 하지만 지식인 사회에서조차 상식과 통념을 놓고 상대방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두 달 넘게 맞닥뜨린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되풀이된 극심한 대립은 공동체의 신뢰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한국 사회의 신뢰자본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정치가 망가뜨린 공동체 신뢰
신뢰 기반은 공동체 유지와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으면 아무리 의견 차이가 크고 갈등이 심해도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여지가 생긴다. 그 전제는 공동체 전체의 발전이 최소한 정파적 이해보다는 우선시될 것이란 모두의 믿음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공동체는 두 진영으로 쪼개졌고 심각한 신뢰 위기에 빠졌다. 상대를 향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졌고 사생결단의 벼랑 끝 충돌만 계속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치적 의견 차이를 넘어 깊은 대립의 골로 빠져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완충지대는 없었다. 정치권이 분열과 대립을 부추겼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국가와 사회의 ‘신뢰자본’에 주목한 학자다. 그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가르는 게 신뢰자본이라고 했다. 1996년 쓴 <트러스트(Trust)>에서는 신뢰를 국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중요 요소로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은 공통의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며 협력하는 신뢰가 부족하다며 ‘저(低)신뢰 국가’로 분류했다.
23년 전 나온 후쿠야마의 이 통찰은 지금 시점에서 더 뼈아프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겨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는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신뢰 기반은 거의 붕괴 상황으로 내몰렸다. 세대 갈등, 빈부 갈등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정파적 이해에 따라 상식과 통념까지 뒤죽박죽돼버렸다. 여야 할 것 없이 ‘내편’이 아닌 ‘상대편’은 애당초 믿지 못할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신뢰 위기는 재앙의 시작
조국 사태가 불러온 공동체의 신뢰 위기는 기본적으로 정치 실패 탓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무겁다. 문제는 그 재난적 파장이 앞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신뢰 기반이 무너진 자리에 지금처럼 정파적 이해만 따지는 정치가 만연하면 경제도, 외교·안보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선 정치 및 행정 행위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고 이는 다양한 형태로 위험회피 비용을 증가시킨다. 저(低)신뢰 사회가 고(高)비용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것을 법과 규칙으로 정해야 하는 사회의 경쟁력은 뒤처지기 마련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적 갈등 비용도 늘어난다.
지금처럼 진영 논리만을 대변하는 광장 목소리로는 신뢰 위기의 생채기를 아물게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층 결집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 기반을 회복하는 정치다. 과연 한국 정치는 두 달 넘게 마구 파헤쳐진 상처를 슬기롭게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sookim@hankyung.com
정파적 견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런저런 갈등과 대립도 어느 때나 있었다. 하지만 지식인 사회에서조차 상식과 통념을 놓고 상대방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두 달 넘게 맞닥뜨린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되풀이된 극심한 대립은 공동체의 신뢰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한국 사회의 신뢰자본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정치가 망가뜨린 공동체 신뢰
신뢰 기반은 공동체 유지와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으면 아무리 의견 차이가 크고 갈등이 심해도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여지가 생긴다. 그 전제는 공동체 전체의 발전이 최소한 정파적 이해보다는 우선시될 것이란 모두의 믿음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공동체는 두 진영으로 쪼개졌고 심각한 신뢰 위기에 빠졌다. 상대를 향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졌고 사생결단의 벼랑 끝 충돌만 계속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정치적 의견 차이를 넘어 깊은 대립의 골로 빠져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완충지대는 없었다. 정치권이 분열과 대립을 부추겼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국가와 사회의 ‘신뢰자본’에 주목한 학자다. 그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가르는 게 신뢰자본이라고 했다. 1996년 쓴 <트러스트(Trust)>에서는 신뢰를 국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중요 요소로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은 공통의 규범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며 협력하는 신뢰가 부족하다며 ‘저(低)신뢰 국가’로 분류했다.
23년 전 나온 후쿠야마의 이 통찰은 지금 시점에서 더 뼈아프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겨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는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신뢰 기반은 거의 붕괴 상황으로 내몰렸다. 세대 갈등, 빈부 갈등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정파적 이해에 따라 상식과 통념까지 뒤죽박죽돼버렸다. 여야 할 것 없이 ‘내편’이 아닌 ‘상대편’은 애당초 믿지 못할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신뢰 위기는 재앙의 시작
조국 사태가 불러온 공동체의 신뢰 위기는 기본적으로 정치 실패 탓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책임이 무겁다. 문제는 그 재난적 파장이 앞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신뢰 기반이 무너진 자리에 지금처럼 정파적 이해만 따지는 정치가 만연하면 경제도, 외교·안보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선 정치 및 행정 행위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고 이는 다양한 형태로 위험회피 비용을 증가시킨다. 저(低)신뢰 사회가 고(高)비용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것을 법과 규칙으로 정해야 하는 사회의 경쟁력은 뒤처지기 마련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적 갈등 비용도 늘어난다.
지금처럼 진영 논리만을 대변하는 광장 목소리로는 신뢰 위기의 생채기를 아물게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층 결집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 기반을 회복하는 정치다. 과연 한국 정치는 두 달 넘게 마구 파헤쳐진 상처를 슬기롭게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