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실종 등 다른 살인 4건, 10건의 화성사건들 사이에 이뤄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 씨가 자백한 살인사건 14건이 모두 드러나면서 그의 범죄행적도 재구성되고 있다.
특히 연쇄살인범인 이 씨가 화성사건 도중 1년 4개월이라는 긴 냉각기를 가진 데 대한 의문도 사실은 이 기간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15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이 씨의 극악무도한 범죄행각은 그가 1986년 1월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해 9월 15일 이 씨는 화성사건의 첫 번째 사건을 저질렀다.

딸의 집에 방문했다가 귀가하던 이모(71) 씨를 당시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의 한 목초지에서 살해한 것.
2차 사건은 한 달 뒤인 같은 해 10월 20일 맞선을 보고 귀가하던 박모(25) 씨가 태안읍 진안리의 농수로에서 성폭행당한 채 알몸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1, 2차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손발을 묶는 화성사건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1, 2차 사건의 범행 수법이 나머지 사건들과 다르긴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에서 초기 범행과 이후 범행의 수법이 차이가 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며 "연쇄살인범이 범행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수법을 찾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화성사건의 시그니처가 나타나기 시작한 3차와 4차 사건은 불과 이틀 간격으로 발생했다.

이 씨는 같은 해 12월 12일 태안읍 안녕리에서 권모(24)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하고선 이틀 뒤인 12월 14일 화성군 정남면에서 이모(21) 씨를 상대로도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5차 사건은 이듬해 1월 10일 태안읍 황계리의 논바닥에서 홍모(18) 양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사건이고 6차 사건은 같은 해 5월 2일 태안읍 진안리의 야산에서 박모(30) 씨가 같은 방법으로 살해된 사건이다.

이 씨는 6차 사건까지는 짧게는 이틀, 길어야 4개월의 간격을 두고 범행했다.

그야말로 폭주한 셈이다.

1988년 9월 7일 안모(54) 씨가 화성군 팔탄면에서 성폭행 이후 살해된 7차 사건은 6차 사건 이후 1년 4개월만에 발생했다.

이는 모두 10건의 화성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8차와 9차 사건 사이 2년 2개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공백기이다.

다만, 8차와 9차 사건 사이 이 씨는 다른 범죄로 7개월가량 수감됐던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6차와 7차 사건 사이가 가장 긴 공백기로 볼 수 있다.

이 씨가 잦은 범행을 이어가다가 이처럼 냉각기를 가진 데 대해 경찰 안팎에서 의문이 일었는데 이 씨가 자백한 화성사건 외 나머지 4건 가운데 1건이 이 기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는 6차 사건 이후 7개월 만인 1987년 12월 24일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한 여고생을 속옷으로 재갈을 물리고 손을 결박한 상태로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이 여고생은 열흘가량 뒤인 이듬해 1월 4일 수원에서 발견됐다.

이로부터 9개월 뒤 7차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이 씨의 공백기는 기존 1년 4개월에서 9개월로 줄어들었다.

과거 범인이 검거돼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은 7차 사건 이후 9일 만인 1988년 9월 16일 발생했다.

태안읍 진안리의 박모(13) 양 집에서 박 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이 사건 또한 이 씨는 자신의 소행이라고 진술했다.
8차와 9차 사건 사이 공백기에도 이 씨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8차 사건 이후 10개월 만인 1989년 7월 18일 태안읍에 살던 김모(9) 양을 살해했다.

당시 김 양이 입었던 치마와 책가방만 5개월 뒤 태안읍 병점5리에서 발견됐을 뿐 김 양은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아 이 사건은 그동안 실종사건으로 분류됐다.

이 씨는 이 사건 두달여 뒤인 1989년 9월 26일 수원시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강도질을 하려다가 붙잡혀 7개월가량 수감된 뒤 1990년 4월 19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로부터 7개월 뒤 이 씨는 피해자의 특정 부위가 마구 훼손돼 화성사건 중 범행 수법이 가장 잔혹한 사건으로 기록된 9차 사건을 저질렀다.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5리의 야산에서 여중생 김모(14) 양을 상대로 한 범행이다.

이후 10차 사건 전까지 5개월 동안 이 씨는 나머지 2건의 다른 살인 행각을 벌였는데 이 2건은 모두 충북 청주에서 일어났다.

1991년 1월 27일과 같은 해 3월 7일 각각 청주시 복대동과 남주동에서 박모(17) 양과 김모(29) 씨를 살해한 그는 1991년을 전후로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며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남주동에서 김 씨를 살해한 지 한 달 만인 1991년 4월 3일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의 야산에서 권모(69) 씨를 상대로 화성사건의 마지막 10차 사건이자 자백한 14건의 살인 중 마지막 살인을 저질렀다.

이후 그는 악마의 얼굴을 숨긴 채 한 여성을 만나 10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지 불과 3개월 만인 1991년 7월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1993년 4월 청주로 이사했다.

이 씨는 아내는 물론 결혼 이듬해 태어난 아들을 상대로도 폭행과 학대를 일삼다가 견디다 못한 아내가 1993년 12월 가출하자 이에 대한 증오심에 이듬해 1월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결국 덜미가 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지만 앞서 벌인 14건의 살인은 물론 아직 정확한 실체조차 파악되지 않은 30여건의 강간·강간미수 등 성범죄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모두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화성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이자 전 국민의 공분의 대상이 된 사건이어서 공소시효가 완성됐더라도 끝까지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