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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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예선 사상 첫 평양 원정에서 북한과 0 대 0으로 비겼다.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고, 생중계조차 되지 않아 경기장 안의 상황은 바깥에서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전격 방북해 관람했지만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퍼진 것 외엔 정상적으로 진행된 게 없었다.

한국은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성 H조 3차전을 치렀다. 키르기스스탄 출신 아시아축구연맹(AFC) 감독관은 AFC에 보낸 보고서에 “김일성경기장에 관중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경기장에는 외신 기자들도 전무한 상태다. 킥오프를 했는데도 무관중이다”라고 전달했다. 현지 인터넷 상황도 열악해 AFC 경기 감독관이 전달한 내용을 대한축구협회에서 받아, 이를 국내 취재진에게 다시 보내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생중계와 한국 취재진 입북이 불허됐기 때문이다. 경기장엔 외신기자의 출입도 금지됐다.

한국은 손흥민(토트넘)과 황의조(보르도) 투톱을 내세우는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후반엔 황희찬(잘츠부르크), 권창훈(프라이부르크), 김신욱(상하이 선화)을 교체 투입했지만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사진=AFC 제공
사진=AFC 제공
남북 대표팀은 경기 시작 후 66분이 지난 현재 각각 옐로카드를 두 장씩 받을 정도로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북한은 리은철이 후반 시작 1분 만에 옐로카드를 받았다. 전반 30분엔 북한의 리영직 선수가 경고를 받았다. 한국도 김영권이 후반 시작 10분, 김민재가 후반 17분 각각 경고를 받았다. 몸싸움이 치열해 선수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고, 경기감독관이 안전요원을 대기시켰다.

이번 경기는 1990년 10월 11일 열린 남북통일 축구대회 후 29년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 스포츠 생중계를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2019년 현재 문자중계라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됐다. 유효슈팅 수, 코너킥이나 프리킥 등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 등 그 흔한 정보들도 얻을 수 없었다. 북한은 이로써 폐쇄적 체제 특성을 또 다시 고스란히 드러냈다. 우리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경기 영상은 이르면 17일 국내에서 시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이 한국 대표단이 평양을 출발하기 전까지 경기 영상 DVD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며 “한국 선수단이 베이징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17일 오전 1시쯤인데, (국내 방송사가)이 영상에 대한 기술적 확인을 하면 제법 시간이 지난 뒤 우리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태도를 감안하면 이 역시 액면 그대로 믿긴 어려워 보인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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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정책 전문가들은 북한이 보인 해괴한 행태에 대해 “외부 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주민들을 단속하는 체제 특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 당국에게 한국인은 바이러스같은 존재”라며 “어떤 의도를 가졌든 한국인을 절대로 주민들과 만나게 하지 않게 해야 김씨 왕조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국제 경기에서마저 이 정도로 극단적 태도를 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남북 간 경색 국면이 앞으로도 계속 장기화될 것임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