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강화→연천 번져 접경지역 '소거'…멧돼지 새 복병 부상
바이러스 생존력 강해 재사육까지 먼 길…돼지고기 가격폭락에 농가 '이중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진된 지 17일이면 꼭 1개월을 맞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달 16일 경기도 파주에서 의심 신고가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김포·연천·강화 등 경기·인천 접경 지역에서 퍼져나가며 치명적인 동물 전염병에 대한 우리나라의 방역 능력을 시험대에 올렸다.

지금까지 총 14차례 발생한 이 질병은 국내 초유의 발병답게 강화도 내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고, 파주·김포·연천의 전 개체를 수매·살처분하는 '초강력 소거'의 전례를 남겼다.

이달 9일을 마지막으로 일주일간 농장에서는 더 발생하지 않으며 주춤해졌지만, 아직도 언제, 어느 곳에서 또 불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양돈 농가에서의 발병만 다소 잠잠해졌을 뿐, 경기·강원 접경지역의 야생멧돼지에게서까지 최근 잇따라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정부의 방역망은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한 달…정상화까지 6개월 이상 걸릴 듯
◇ 유례없는 발병…살처분 15만 마리 넘어
지난해 중국을 휩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올해 5월 북한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오더니 지난달 17일(이하 확진일 기준) 경기도 파주의 한 농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도 유입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이후 경기도 연천·김포·파주로 번졌다가 인천 강화에서만 연달아 5건이 확진됐다.

방역 당국이 강화 내 3만마리가 넘는 모든 돼지를 살처분하는 강수를 둔 후, 질병은 방향을 바꿔 동진(東進)해 파주·김포·연천에서 발생했다.

정부는 긴급행동지침(SOP) 상 범위 500m를 뛰어넘어 발생 농장 반경 3㎞까지 돼지를 살처분하고, 중점관리지역과 발생·완충 지역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등 방역에 역량을 집중해 대응해왔다.

특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집중 발생한 파주·김포·연천에 대해서는 관내 모든 돼지를 일단 수매하되, 이를 거부하거나 도축에 적합하지 않은 개체는 모두 살처분하는 소거 작전까지 돌입했다.

감염 위험이 상존하는 강원도 접경지역에 대해서도 희망 농가를 대상으로 수매 신청을 받고 있다.

이 같은 강력한 조치에 힘입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이달 9일 연천을 마지막으로 일주일간 잠잠한 상태다.

지난 한달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는 모두 15만4천548마리에 이른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한 달…정상화까지 6개월 이상 걸릴 듯
◇ 통제 어려운 멧돼지 '비상'…뒤늦게 대대적 사냥
양돈 농장을 중심으로 한 '집돼지' 감염은 소강 국면에 있지만 최근 야생멧돼지에서 잇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중점 방역의 대상이 바뀌었다.

학계에서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주요 감염 경로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음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철통방어'를 내세우며 그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봤던 정부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물론 덩치가 큰 멧돼지가 휴전선 철책을 통과할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에 북한의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우리나라로 옮겨왔는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발병한 농가의 바이러스가 다시 멧돼지로 옮겨갔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야생 멧돼지에서는 지금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총 6건 검출됐고, 14일 6번째 폐사체는 민통선 이남에서 발견돼 이목을 끌었다.

당국은 당초 멧돼지를 상대로 한 총기 사용을 금지했다가 수차례 바이러스 검출이 이뤄지고 나서야 엽사와 군을 투입하고 총기 사용을 허용했지만 '뒷북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16일 "환경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행동지침은 야생멧돼지 발생 상황을 대비해 만든 것으로, 국내 발생 초기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멧돼지 이동차단망이 설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총기 포획에 따른 멧돼지 이동과 감염 확산을 저지하고자 총기 포획을 금지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퇴치의 성공 사례로 불리는 체코의 경우는 멧돼지에게서만 질병이 발생했고, 발생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총기포획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한 달…정상화까지 6개월 이상 걸릴 듯
◇ 기약 없는 농장 재가동…"조만간 평가 시작"
기세가 수그러든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이 상태에서 그대로 꺾인다고 하더라도 경기 북부의 농장에서 다시 돼지 소리가 들리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발생 농장은 이동제한 해제일로부터 40일이 경과하고, 단계별 요령에 따라 이뤄지는 60일간의 시험을 무사통과해야 다시 입식(돼지를 들임)할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 4∼19일을 고려해 통상 21일간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최소 121일간 추가 발생이 없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실제로 입식이 이뤄지기까지는 이보다 훨씬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농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생했다는 엄중함이 있고, 바이러스가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과 달리 환경에서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며 "재입식 이후 다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섣불리 재입식에 나섰다가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두고 경기 북부 지역을 '비워둘' 것이라는 이야기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거 발생한 해외에서도 재입식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며 "분야별 전문가로 평가 위원회를 꾸려 지역·농장의 오염 수준과 재입식 시험 사육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 평가를 통해 재입식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입식까지는 AI나 구제역보다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언제가 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현행 규정상 최장 6개월까지 지원되는 생계안정자금 기간을 늘리거나,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한 달…정상화까지 6개월 이상 걸릴 듯
◇ 돼지고기 가격 폭락…1㎏당 3천원도 위태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가 한 달째 이어지면서 국내 양돈 농가는 살처분 같은 직접 피해를 넘어서 가격 폭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국내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이달 14일 현재 1㎏당 3천30원에 그쳐 지난달 평균 4천791원보다 36.8%나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격 3천911원과 비교해도 22.9% 낮다.

돼지고기 소매 가격(냉장 삼겹살) 역시 1㎏당 1만9천170원으로 2만원 선이 무너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격은 2만240원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이후 일시이동중지명령과 권역화 통제 조치 등 여러 가지 조치를 내리다보니 도매시장과 경매장에서 가격이 급등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경기 북부와 강원에서 수매한 물량은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공급은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소비를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롯데마트·이마트 등 대형마트와 한돈 인증점 등에서 할인 판매 행사를 펼치고, 단체급식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도록 관련 기관·단체와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