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學협력에 명운 건 싱가포르…"정부·기업·대학 따로 움직이면 亡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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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9
글로벌 산학협력 현장을 가다
(3) 싱가포르
글로벌 산학협력 현장을 가다
(3)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사막에 버금가는 물 부족 국가다. 빗물을 가둘 땅이 부족해서다. 하지만 오늘날 싱가포르는 글로벌 물산업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산·학·연 협력이다. 글로벌 수처리 연구개발(R&D) 센터만 26개다. 지멘스, 니토덴코, 도시바, 베이징수자원공사 등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싱가포르의 대학 연구진과 첨단 수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싱가포르 내 물(水) 기업은 작년 말 200여 개로 2000년대 초반 대비 세 배로 증가했다. 1960년대 시작된 싱가포르의 ‘물 독립’을 향한 백년대계는 ‘2060년 자체 물 생산 85%’를 향해 순항 중이다. 한·일 갈등 이후 소재·부품·장비 독립을 꾀하고 있는 국내 상황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로벌 기업 몰리는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 산·학·연 협력은 국가 생존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600만 명을 밑도는 적은 인구, 물과 식재료조차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근원적인 한계로 정부, 기업, 대학이 따로 움직여선 살아남기 어렵다. ‘푸드 독립’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올 5월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식재료의 30%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매튜 창 싱가포르국립대(NUS) 바이오케미스트리 학부 교수는 “아시아 최대 농업 전문 기업인 윌마가 싱가포르 정부와 함께 지난해 6월 식품공학 및 인공생물학 연구소를 NUS에 설립했다”며 “꼬치구이 요리인 사테도 바이오 물질로 개발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의 R&D 역량을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연구재단(NRF)은 이런 목적으로 2006년 설립됐다. 이후 싱가포르가 글로벌 산학협력 분야에서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불과 7년 만인 2013년에 롤스로이스가 7500만싱가포르달러(약 650억원)를 투자해 난양공대(NTU)에 첫 ‘코퍼릿랩(corporate lab)’을 만들었다. 코퍼릿랩은 정부와 기업이 1 대 1 방식으로 투자하고, 대학은 인적자원을 제공하는 공동 연구소다.
작년에만 알리바바, HP(이상 NTU에 설립),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NUS) 등 해외 기업 세 곳이 이 같은 방식으로 싱가포르 대학에 연구소를 세웠다. 강민석 NUS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 없이 대학과 기업이 R&D 센터를 세우는 경우도 많다”며 “우버가 올해 NUS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경쟁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대학
유수의 해외 기업들을 불러들이는 싱가포르 산·학·연 협력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생태계 조성자로서의 정부 역할을 꼽을 수 있다. NRF를 한국의 청와대 격인 총리실 직속 기구로 설립하고 국가 R&D 예산을 통합했다. 2016~2020년 NRF 예산은 190억싱가포르달러(약 16조원)에 달한다. 대부분 재원은 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쓰인다.
이 덕분에 ‘2014 QS 대학 랭킹’에서 39위였던 NTU는 2020년 평가에선 11위로 도약했다. NUS도 공동 11위에 올랐다. 톱 15위에 포함된 아시아 대학은 두 곳뿐이다. 조남준 NTU 신재료연구소 책임교수는 “국립대인 NTU와 NUS 두 대학이 인공지능(AI) 분야에 쏟아붓는 연구비가 5년간 1조원에 달한다”며 “200개가 넘는 대학에 AI 연구비를 고루 나눠줘야 하는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대학은 개방과 철저한 경쟁 시스템으로 중무장했다. 서브라 수레시 NTU 총장은 카네기멜론대 총장 출신이다. 총장을 비롯해 50명의 NTU 리더 그룹 중 싱가포르 출신은 10여 명뿐이다.
교수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NTU가 2009년 지구과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연구소장으로 초빙한 케리 시에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에게 10년간 맡긴 돈은 1억5000만싱가포르달러(약 1300억원)였다. 일반 교수들의 연봉 수준도 미국 유명 대학을 능가한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교수 사회는 기업 못지않게 경쟁의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학과는 단숨에 통폐합된다.
정년을 보장받으며 산학협력 과제를 ‘고액 아르바이트’처럼 따내는 한국 교수들과 달리 싱가포르 대학 교수들은 대부분 계약제다. 코퍼릿랩만 해도 핵심성과지표(KPI)가 명확하다. 기업은 대학에 투자하면서 특허와 논문 수로 성과를 측정한다.
싱가포르=박동휘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글로벌 기업 몰리는 싱가포르
싱가포르에서 산·학·연 협력은 국가 생존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600만 명을 밑도는 적은 인구, 물과 식재료조차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근원적인 한계로 정부, 기업, 대학이 따로 움직여선 살아남기 어렵다. ‘푸드 독립’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올 5월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까지 모든 식재료의 30%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매튜 창 싱가포르국립대(NUS) 바이오케미스트리 학부 교수는 “아시아 최대 농업 전문 기업인 윌마가 싱가포르 정부와 함께 지난해 6월 식품공학 및 인공생물학 연구소를 NUS에 설립했다”며 “꼬치구이 요리인 사테도 바이오 물질로 개발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적 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의 R&D 역량을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연구재단(NRF)은 이런 목적으로 2006년 설립됐다. 이후 싱가포르가 글로벌 산학협력 분야에서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불과 7년 만인 2013년에 롤스로이스가 7500만싱가포르달러(약 650억원)를 투자해 난양공대(NTU)에 첫 ‘코퍼릿랩(corporate lab)’을 만들었다. 코퍼릿랩은 정부와 기업이 1 대 1 방식으로 투자하고, 대학은 인적자원을 제공하는 공동 연구소다.
작년에만 알리바바, HP(이상 NTU에 설립),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NUS) 등 해외 기업 세 곳이 이 같은 방식으로 싱가포르 대학에 연구소를 세웠다. 강민석 NUS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 없이 대학과 기업이 R&D 센터를 세우는 경우도 많다”며 “우버가 올해 NUS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경쟁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대학
유수의 해외 기업들을 불러들이는 싱가포르 산·학·연 협력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생태계 조성자로서의 정부 역할을 꼽을 수 있다. NRF를 한국의 청와대 격인 총리실 직속 기구로 설립하고 국가 R&D 예산을 통합했다. 2016~2020년 NRF 예산은 190억싱가포르달러(약 16조원)에 달한다. 대부분 재원은 대학의 연구 경쟁력을 키우는 데 쓰인다.
이 덕분에 ‘2014 QS 대학 랭킹’에서 39위였던 NTU는 2020년 평가에선 11위로 도약했다. NUS도 공동 11위에 올랐다. 톱 15위에 포함된 아시아 대학은 두 곳뿐이다. 조남준 NTU 신재료연구소 책임교수는 “국립대인 NTU와 NUS 두 대학이 인공지능(AI) 분야에 쏟아붓는 연구비가 5년간 1조원에 달한다”며 “200개가 넘는 대학에 AI 연구비를 고루 나눠줘야 하는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대학은 개방과 철저한 경쟁 시스템으로 중무장했다. 서브라 수레시 NTU 총장은 카네기멜론대 총장 출신이다. 총장을 비롯해 50명의 NTU 리더 그룹 중 싱가포르 출신은 10여 명뿐이다.
교수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NTU가 2009년 지구과학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연구소장으로 초빙한 케리 시에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에게 10년간 맡긴 돈은 1억5000만싱가포르달러(약 1300억원)였다. 일반 교수들의 연봉 수준도 미국 유명 대학을 능가한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교수 사회는 기업 못지않게 경쟁의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학과는 단숨에 통폐합된다.
정년을 보장받으며 산학협력 과제를 ‘고액 아르바이트’처럼 따내는 한국 교수들과 달리 싱가포르 대학 교수들은 대부분 계약제다. 코퍼릿랩만 해도 핵심성과지표(KPI)가 명확하다. 기업은 대학에 투자하면서 특허와 논문 수로 성과를 측정한다.
싱가포르=박동휘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