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까지 'NO 재팬' 가세…수출규제 이후 日제품 구매 80%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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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월 석달간 공공조달 31억
민간 '불매운동' 의식한 듯
中企 제품이나 외국산 대체
민간 '불매운동' 의식한 듯
中企 제품이나 외국산 대체
최근 정부세종청사 입구에 눈에 띄는 입간판이 설치됐다. 공무원노동조합이 만든 이 간판엔 ‘NO 아베,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 정부는 일본에 무력하게 당했지만 오늘날 일본과의 경제 분쟁에선 정부도 불매 운동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부의 ‘일본 불매 운동’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졌다. 16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제품 공공 조달 현황’을 보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올 7월부터 지난달까지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일본산 구매액은 31억7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79.3% 감소했다. 일본산 수입은 올 1~6월에도 36.9% 감소하긴 했다. 하지만 수출 규제 이후 감소폭이 두 배 이상 뛰었다. 7~9월 일본 외의 외국산과 국산 구매가 각각 23.7%, 12.7%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공무원도 “가급적 일본산 안사”
조달청 관계자는 “정부가 일본 제품을 배제하라고 지시·권고한 일은 없다”면서도 “각 기관들이 수출 규제 이후 일본에서 수입하던 제품을 다른 외국산으로 대체하거나 국산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간에서처럼 자발적인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공 조달을 많이 하는 일본산은 농기계나 사무용품, 냉난방장치 등이다. 수출 규제 대상인 전략물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산을 수입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일본 제품 구매를 꺼리는 기관들이 늘고 있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수출 규제 같은 비상식적인 결정을 한 국가라면 앞으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 아닌가”라며 “거래처로서 일본이란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것”이라고 했다. 정부세종청사에 설치된 입간판에서 보듯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국민의 반일(反日) 감정을 의식하는 측면도 있다.
올 1~6월 정부는 일본산 카메라용 렌즈를 1년 전보다 16.4% 늘어난 9억3000만원어치 사들였는데 7월 이후엔 2억3000만원어치를 사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보다 46.5% 줄었다. 이전에 많이 사던 소니, 캐논 등 일본 제품 대신 국내 중소기업 상품을 선택했다. 기관별로는 공공 조달 시장의 98%를 차지하는 공공기관에서 일본산 수입이 79.4% 줄었다. 구매액은 적지만 감소폭은 정부부처(83.0%)와 지자체(94.0%)가 더 컸다.
“불필요하게 일본 자극” 지적도
일본산 퇴출 운동은 한·일 간 신뢰를 훼손한 일본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정부까지 나서 불매 운동을 벌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일(對日)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기업 심리가 위축되고, 예정돼 있던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가 취소되는 등 직·간접적인 피해가 쌓이고 있다”며 “하루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 차원의 불매 운동까지 벌이면 일본 정권을 자극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공공 조달 시장에서 일본산 수입액은 연간 1000억원도 안 된다. 불매 운동을 한들 일본에 실질적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효과는 없는데 부작용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산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국제조달협정 위반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은 공공 조달 시장에서 20만달러 이상 물품을 구입할 때는 외국 기업의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 되고, 해외 공급자를 국내 기업보다 불리하게 대우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 의원은 “정부는 불매 운동 같은 감정에 치우친 행동을 할 게 아니라 한·일 경제분쟁을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정부의 ‘일본 불매 운동’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졌다. 16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제품 공공 조달 현황’을 보면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올 7월부터 지난달까지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일본산 구매액은 31억7000만원으로, 1년 전보다 79.3% 감소했다. 일본산 수입은 올 1~6월에도 36.9% 감소하긴 했다. 하지만 수출 규제 이후 감소폭이 두 배 이상 뛰었다. 7~9월 일본 외의 외국산과 국산 구매가 각각 23.7%, 12.7%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공무원도 “가급적 일본산 안사”
조달청 관계자는 “정부가 일본 제품을 배제하라고 지시·권고한 일은 없다”면서도 “각 기관들이 수출 규제 이후 일본에서 수입하던 제품을 다른 외국산으로 대체하거나 국산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민간에서처럼 자발적인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공 조달을 많이 하는 일본산은 농기계나 사무용품, 냉난방장치 등이다. 수출 규제 대상인 전략물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산을 수입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일본 제품 구매를 꺼리는 기관들이 늘고 있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수출 규제 같은 비상식적인 결정을 한 국가라면 앞으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 아닌가”라며 “거래처로서 일본이란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것”이라고 했다. 정부세종청사에 설치된 입간판에서 보듯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이 국민의 반일(反日) 감정을 의식하는 측면도 있다.
올 1~6월 정부는 일본산 카메라용 렌즈를 1년 전보다 16.4% 늘어난 9억3000만원어치 사들였는데 7월 이후엔 2억3000만원어치를 사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보다 46.5% 줄었다. 이전에 많이 사던 소니, 캐논 등 일본 제품 대신 국내 중소기업 상품을 선택했다. 기관별로는 공공 조달 시장의 98%를 차지하는 공공기관에서 일본산 수입이 79.4% 줄었다. 구매액은 적지만 감소폭은 정부부처(83.0%)와 지자체(94.0%)가 더 컸다.
“불필요하게 일본 자극” 지적도
일본산 퇴출 운동은 한·일 간 신뢰를 훼손한 일본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정부까지 나서 불매 운동을 벌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대일(對日)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기업 심리가 위축되고, 예정돼 있던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가 취소되는 등 직·간접적인 피해가 쌓이고 있다”며 “하루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 차원의 불매 운동까지 벌이면 일본 정권을 자극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공공 조달 시장에서 일본산 수입액은 연간 1000억원도 안 된다. 불매 운동을 한들 일본에 실질적 타격을 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효과는 없는데 부작용만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산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국제조달협정 위반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은 공공 조달 시장에서 20만달러 이상 물품을 구입할 때는 외국 기업의 참여를 배제해서는 안 되고, 해외 공급자를 국내 기업보다 불리하게 대우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 의원은 “정부는 불매 운동 같은 감정에 치우친 행동을 할 게 아니라 한·일 경제분쟁을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