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한은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한은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은행이 16일 금리 인하를 결정함에 따라 기준금리는 2년 만에 역대 최저 수준인 연 1.25%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는 여전히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도 있다”며 ‘비둘기’(통화완화 선호)를 날렸다.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시장 전문가들도 내년 상반기 한은이 추가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시장 예상보다 많은 ‘금리 동결’ 소수의견(2명)이 나왔다는 점이 변수다. 채권 시장에서도 금통위 직후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옅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며 국고채 금리가 소폭 상승했다. 한은이 내년 초까지 경기를 지켜본 뒤 2월이나 4월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주열 “통화정책 여력 있다”

이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나가겠다”며 “완화 정도를 얼마나 크게 가져갈지는 대외 위험 전개 과정과 국내 경제·물가에 미치는 영향, 금융안정 상황, 이번 금리 인하에 따른 효과 등을 검토한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이 부각되고 수출·투자 등 지표도 부진하면 내년에 금리를 또 낮추겠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이번 인하에도 추가적 통화정책 여력이 남아 있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에도 외국계 자금 유출이나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그는 “지난 7월 금리 인하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계속 둔화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계 부채 규제를 강화한 영향 등을 감안하면 이번 추가 인하가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경기 동향에 대해선 여전히 경계심을 나타냈다.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리스크 우려가 완화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미·중 무역분쟁의 주요 이슈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주요국 경제지표도 개선 조짐이 뚜렷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또 “올해 성장률이 7월 전망 경로를 밑돌 것”이라고 답했다. 한은 전망치인 2.2% 달성이 어려워졌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총재는 시장 예상보다 많은 소수의견이 나온 점을 의식한 듯 관련 질문에 이례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해 “합의제 기구에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결정 과정에서 이견이 적지 않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금리 내린 날 '비둘기' 날린 이주열…내년 2월께 추가인하 가능성
내년 상반기 또 인하 가능성

전문가들은 내년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글로벌 경기의 하방 위험을 경고하는 등 여건이 좋지 않다”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고 그에 맞춰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두 명의 금통위원이 동결 소수의견을 냈지만 금통위 전체적으론 비둘기파의 목소리가 강해졌다”며 “내년 4월에 금통위원 4명이 동시에 바뀌는데 새 금통위원들이 선임되면 신중론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 전에 한 차례 더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가계부채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그 자리를 경기침체, 디플레이션 우려가 차지했다”며 “현재로서는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고 분석했다.

다만 내년 초 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지거나 동결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김상훈 KB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두 번의 금리인하 효과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결정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고 봤다. 박석길 JP모간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추가 인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예상했었는데 소수의견이 등장한 데다 이주열 총재의 발언 등을 종합해볼 때 경기 상황에 따라 동결을 지속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고경봉/김익환/이호기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