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미·중 무역전쟁과 함께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꼽혀왔다. 세계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노딜’이 현실화되면 세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브렉시트 시한이 사실상 3개월 연장되면서 노딜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 하지만 오히려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브렉시트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세계 경제를 압박할 것이란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가늠조차 힘든 브렉시트 향방

브렉시트의 핵심은 영국이 EU라는 단일시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영국은 브렉시트 후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다는 계획이지만 성사될지, 성사되더라도 언제 가능할지 예견하기 힘들다. 영국과 EU가 FTA를 맺지 않는 등 아무런 후속 대책 없이 브렉시트가 진행되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0% 줄어들 것이라고 영국 재무부는 경고했다. 영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를 웃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자체만으로 세계 GDP가 0.2% 이상 감소하고, EU의 부정적 영향 등까지 고려하면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표결도 못한 브렉시트 합의안…'영국發 짙은 안개' 세계 경제 짓눌러
지난 17일 영국 정부와 EU가 새 브렉시트 합의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유럽과 뉴욕증시가 일제히 상승했다. 영국 파운드화는 1% 가까이 급등하면서 최근 5개월 새 최고치인 1.298달러까지 치솟았다.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에 세계 금융시장은 환호했다.

하지만 브렉시트 연기는 이 같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공산이 크다. 브렉시트 향방이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연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 시행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총선 결과에 따라 브렉시트 향방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브렉시트 강경파가 득세하면 ‘노딜 방지법’이 폐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아예 브렉시트 자체가 폐기될 수도 있다. 세 번째 연기된 브렉시트 시한이 내년 1월 말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도 예측된다.

표결도 못한 브렉시트 합의안…'영국發 짙은 안개' 세계 경제 짓눌러
잇단 세계 경기 침체 경고

미·중 무역분쟁도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1단계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지만 분쟁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이 그간 문제로 지적해온 보조금 불법 지급, 지식재산권 강탈 등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의 민주화 시위, 대만 이슈,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 등도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봉합된 갈등이 다시 터지면 관세전쟁이 더 격렬해질 수 있다.

미국은 EU와도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8일부터 EU를 대상으로 75억달러 규모의 상품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EU가 에어버스에 부당 보조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EU도 보복관세를 검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은 잇따라 세계 경기 침체를 경고하고 있다. 세계 경제 중에서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둔화세가 두드러진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9월 올해와 내년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2%, 1.4%에서 1.1%, 1.2%로 각각 낮췄다. 같은 기간 인플레이션 전망치도 대폭 낮췄다.

ECB는 9월 시중은행이 ECB에 맡기는 예금에 대한 금리를 현행 연 -0.4%에서 연 -0.5%로 인하했다. ECB가 국채를 사들이는 이른바 양적완화도 재개했다.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에 나설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아서다. 유로존의 제조업·서비스업 구매관리자들의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복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8월 51.9에서 지난달 50.1로 떨어졌다. 6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중국 경기도 갈수록 내리막이다. 3분기 중국의 성장률은 6.0%로,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은 이 같은 세계적 경기 하강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된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