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470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심의하는 쓴 시간은 정확히 2일 17시간36분에 불과했다. 여야 간사 선임과 소위 구성 등을 제외한 실제 심의 시간이다. 1분당 1194억원의 예산을 ‘훑어’ 본 것이다.

국회 예산 심사는 해마다 졸속 처리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9월 초부터 예산안 통과의 법적 시한인 12월2일까지의 정기국회는 대부분 허송세월이다. 2013년 국가재정법 개정으로 심의 기간이 60일에서 90일로 늘었지만 실제 심사 기간은 평균 15일에 그쳤다. 법 개정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작년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는 예산안이 9월 3일 제출되고 시간을 허비하다 법정시한을 30일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 심의를 시작했다. 11월 6일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예산심의 소위원회가 예비심사를 위한 첫 회의였다.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등이 있어 예산안 심의를 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심의 기간이 길어야 한 달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소위 구성을 둘러싼 여야간 입씨름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막판에 ‘벼락치기’ 심사에 돌입했다.

추가경정예산안 심의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7조원 규모의 추경안은 정부 제출 99일 만인 지난 8월 2일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기간 동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는 단 세 차례 열렸다. 공식 회의 시간은 다 합쳐봐야 만 하루(23시간 30분)가 채 안됐다. 예결위 관계자는 “시간에 쫓겨 수백억원 짜리 사업 심사를 한 두 마디로 끝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산안 졸속심사의 원인으로 국정 감사와 예산 심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정기국회 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국감과 예산 심사를 한 번에 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정부 예산안 제출과 동시에 국회 논의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심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사례도 참고할만하다. 미국의 경우 의회의 예산 심의는 정부안과 완전히 다른 예산안이 나올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진행된다. 미국은 8개월, 영국 독일 프랑스는 4~5개월 동안 심의한다. 영국, 캐나다 등은 아예 예산안 편성 단계부터 의회와 행정부가 협의한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