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재정은 방파제…확장예산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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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경제 엄중" 재정지출 또 강조
대입 정시비중 확대 언급 등
강력한 '공정 드라이브' 예고
"경제 엄중" 재정지출 또 강조
대입 정시비중 확대 언급 등
강력한 '공정 드라이브' 예고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내년도 확장예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악화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는 만큼 이를 막을 ‘슈퍼 예산’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 포용, 평화가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의 ‘공정 드라이브’를 시사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선 “제도에 내재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바꿔내자는 것이 국민 요구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국민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 대학입시 정시 비중 상향 등의 입시제도 개편을 통한 불공정 해소 의지도 나타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선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사정 기능이 작동했다면 국정농단사건은 없었을 것”이라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당부했다.
탄력근로제 확대와 규제개혁 법안의 국회 처리가 시급하다는 점도 부각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에 근로시간 단축이 확대 시행됨에 따라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며 “그래야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3법’, 기술 자립화를 위한 ‘소재·부품·장비특별법’ 등 규제혁신 법안의 국회 처리도 재차 촉구했다.
文, 규제·노동개혁 언급 없이…또 '재정 풀기'만 강조한 경제해법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혁신’을 맨 앞에 내세웠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한 ‘포용’은 뒤로 밀렸다. 한 달 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던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도 “엄중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혁신을 정책 1순위로 올렸지만 당연히 함께 가야 할 규제개혁 얘기는 없었다. ‘엄중한 상황’에 처한 경제를 되살리겠다면서 내놓은 해법은 ‘나랏돈’을 더 많이 푸는 게 전부였다. “규제개혁 없이 재정 확대만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건 어불성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정 만능론’에 빠진 정부
문 대통령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 ‘외부 변수’로 인해 한국도 어려운 상황을 맞은 만큼 재정을 더 많이 풀어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 대목까지는 대다수 전문가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재정을 어디에 쓰느냐’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늘어난다.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퍼주기식 복지’에 투입하는 돈이 훨씬 많아서다.
내년 보건·복지·노동 부문에 투입하기로 한 나랏돈은 181조6000억원. 올해(161조원)보다 12.8% 늘어 사상 처음으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를 넘어섰다. 경제 예산으로 분류되는 △연구개발(R&D·20조5000억원→24조1000억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18조8000억원→23조9000억원) △사회간접자본(SOC·19조8000억원→22조3000억원)을 압도하는 규모다.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지출을 늘리더라도 나라살림에 두고두고 부담을 주는 복지보다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매우 건전하다”고 평가한 재정건전성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정부 씀씀이가 커지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부터 내년도 예산안까지 재정지출 증가율은 명목 경제성장률(경상성장률)의 두 배를 크게 넘어선다. 한국의 총재정지출 증가율은 2015~2017년 경상성장률(5.5%)보다 낮은 4.0%에 그쳤지만 △2018년 7.1%(경상성장률 3.1%) △2019년 10.8%(3.0%) △2020년 8.0%(3.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커진 씀씀이를 빚으로 메우다 보니 올해 37.1%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3년 46.4%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금 (재정을 확 풀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란 문 대통령의 발언도 논란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분별한 확장 재정이야말로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지울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성장 위해선 규제개혁이 먼저”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재정확대로 경기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로 지목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IMF 권고사항 중 정부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냈다”고 비판했다. IMF가 재정 확대와 함께 강조한 노동개혁 필요성은 빼놓아서다. IMF는 지난 5월 한국 정부에 대해 “노동시장과 상품시장 개혁은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열쇠”라며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강화하고 민간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존 사업자에 대한 보호를 완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태기 교수는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근본적인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내용은 시정연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경제활력 회복의 출발점을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호/오상헌/이태훈 기자 chsan@hankyung.com
문 대통령은 이날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 포용, 평화가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의 ‘공정 드라이브’를 시사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선 “제도에 내재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바꿔내자는 것이 국민 요구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국민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며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전면 실태조사, 대학입시 정시 비중 상향 등의 입시제도 개편을 통한 불공정 해소 의지도 나타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선 “권력형 비리에 엄정한 사정 기능이 작동했다면 국정농단사건은 없었을 것”이라며 조속한 법안 처리를 당부했다.
탄력근로제 확대와 규제개혁 법안의 국회 처리가 시급하다는 점도 부각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에 근로시간 단축이 확대 시행됨에 따라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며 “그래야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3법’, 기술 자립화를 위한 ‘소재·부품·장비특별법’ 등 규제혁신 법안의 국회 처리도 재차 촉구했다.
文, 규제·노동개혁 언급 없이…또 '재정 풀기'만 강조한 경제해법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혁신’을 맨 앞에 내세웠다. 지난해 시정연설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한 ‘포용’은 뒤로 밀렸다. 한 달 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던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도 “엄중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혁신을 정책 1순위로 올렸지만 당연히 함께 가야 할 규제개혁 얘기는 없었다. ‘엄중한 상황’에 처한 경제를 되살리겠다면서 내놓은 해법은 ‘나랏돈’을 더 많이 푸는 게 전부였다. “규제개혁 없이 재정 확대만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건 어불성설”(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정 만능론’에 빠진 정부
문 대통령은 연설의 상당 부분을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미·중 무역분쟁 등 ‘외부 변수’로 인해 한국도 어려운 상황을 맞은 만큼 재정을 더 많이 풀어 꺼져가는 경기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 대목까지는 대다수 전문가도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재정을 어디에 쓰느냐’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늘어난다.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퍼주기식 복지’에 투입하는 돈이 훨씬 많아서다.
내년 보건·복지·노동 부문에 투입하기로 한 나랏돈은 181조6000억원. 올해(161조원)보다 12.8% 늘어 사상 처음으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를 넘어섰다. 경제 예산으로 분류되는 △연구개발(R&D·20조5000억원→24조1000억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18조8000억원→23조9000억원) △사회간접자본(SOC·19조8000억원→22조3000억원)을 압도하는 규모다.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지출을 늘리더라도 나라살림에 두고두고 부담을 주는 복지보다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매우 건전하다”고 평가한 재정건전성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정부 씀씀이가 커지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작년부터 내년도 예산안까지 재정지출 증가율은 명목 경제성장률(경상성장률)의 두 배를 크게 넘어선다. 한국의 총재정지출 증가율은 2015~2017년 경상성장률(5.5%)보다 낮은 4.0%에 그쳤지만 △2018년 7.1%(경상성장률 3.1%) △2019년 10.8%(3.0%) △2020년 8.0%(3.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커진 씀씀이를 빚으로 메우다 보니 올해 37.1%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3년 46.4%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금 (재정을 확 풀어)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란 문 대통령의 발언도 논란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분별한 확장 재정이야말로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지울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성장 위해선 규제개혁이 먼저”
전문가들은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재정확대로 경기에 대응할 수 있는 나라로 지목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IMF 권고사항 중 정부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냈다”고 비판했다. IMF가 재정 확대와 함께 강조한 노동개혁 필요성은 빼놓아서다. IMF는 지난 5월 한국 정부에 대해 “노동시장과 상품시장 개혁은 잠재성장력을 높이는 열쇠”라며 “노동시장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강화하고 민간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존 사업자에 대한 보호를 완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태기 교수는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근본적인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내용은 시정연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경제활력 회복의 출발점을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호/오상헌/이태훈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