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영세 자영업자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줄인다며 작년부터 운영비 업무추진비 등을 신용카드 대신 직불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했지만 56개 정부기관 중 35곳은 여전히 신용카드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행정기관을 지휘·감독하는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 정부조직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등은 아예 직불카드를 발급받지 않았다. 신용카드회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드 수수료율을 강제로 내린 정부가 정작 자신들은 “영수증 관리가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직불카드를 쓰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이란 지적이 나온다.

영세상인 수수료 부담 덜어준다더니…정부부처 63%는 '직불카드' 안써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23일 기획재정부 등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구매카드를 사용하는 56개 기관은 작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총 1조1407억원을 결제했다. 이 중 직불카드 결제금액은 1.7%인 195억원에 불과했다. 신용카드 결제액은 1조1212억원이었다.

국고금관리법에 따라 정부기관은 물품구입비, 여비 등을 결제할 때 정부구매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정부구매카드는 신용카드밖에 없었지만 기재부가 작년 7월 “영세·중소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직불형 정부구매카드를 도입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8~2.3%, 직불카드는 0.5~1.5%다.

직불형 정부구매카드를 도입하지 않은 기관은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행안부 통일부 외교부 환경부 여성가족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부처뿐 아니라 국회 헌법재판소 등 26곳이다. 직불카드를 발급받았지만 사용실적이 없는 곳은 대법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방부 해양수산부 통계청 조달청 등 9곳이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신용카드는 결제일이 정해져 있어 관리가 쉽지만 직불카드는 사용 후 즉시 대금이 인출돼 수시로 영수증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영세 자영업자를 돕자며 도입한 제도를 정부기관이 단지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