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운 국가로 꼽혔던 칠레가 대규모 시위로 큰 혼란에 빠졌다. 칠레 정부는 뒤늦게 시위를 촉발했던 지하철 요금 인상안을 철회하고 기준금리 인하 등의 유화책을 내놨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23일(현지시간) 칠레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부터 칠레 중앙노동조합총연맹(CUT)이 주도하는 총파업이 시작되면서 근로자도 대거 시위에 가세했다.

이번 시위는 칠레 정부가 지난 6일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을 30칠레페소(약 50원) 인상하기로 하면서 촉발됐다. 그동안 쌓인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칠레 전역에서 과격 시위가 벌어졌다. 지금까지 시위로 18명이 숨졌고 부상자도 269명에 달한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전날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 등을 담은 대국민 담화를 내놨지만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그는 △연금 급여 하한액 20% 인상 △빈곤층의 의약품 가격 인하 △최저임금 월 480달러 보장 등을 약속했다.

칠레 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기존 연 2%에서 연 1.75%로 0.25%포인트 내렸다. 중앙은행은 “칠레 경제는 부분적인 마비 상황이어서 기업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고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칠레는 경제난과 물가 상승에 대응해 지난 6월과 9월에도 각각 0.5%포인트 금리를 인하했다.

칠레는 정책 투명성과 기업 친화적 환경, 원자재 구리 가격 상승세 등에 힘입어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하고 안정적인 국가로 평가받았다. 2000년 30%에 이르던 칠레의 빈곤 비율은 2017년 6.4%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소득 격차가 가장 큰 국가 중 하나가 됐다.

로이터통신은 “칠레인들은 그동안 임대료와 공공요금 인상, 낮은 연금 급여 등으로 불만이 컸다”며 “좌파 성향 야당이 내세우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라고 보도했다.

칠레 정부의 초기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있다. 시위 첫날 피녜라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피자를 먹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이 더 분노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