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숙의정치 넘어 '자유의 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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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말에서 成敗 갈리는데
말이 드러날 땐 조작될 수도
집단 성찰·토론 필수적이지만
暗默知·비언어 소통이 더 중요
경제활동 가로막는 규제 철폐
스스로 행동할 자유 확 넓혀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자유철학아카데미 원장 >
말이 드러날 땐 조작될 수도
집단 성찰·토론 필수적이지만
暗默知·비언어 소통이 더 중요
경제활동 가로막는 규제 철폐
스스로 행동할 자유 확 넓혀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자유철학아카데미 원장 >
성찰과 토론 없이 정치를 하는 게 현 정부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는 깊은 생각과 충분한 의논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행동이 없는 정치를, 간단히 말해 숙의(熟議)가 없는 정치를 한다는 뜻이다. 숙의가 없는 정치는 무능과 독선을 불러왔다. 그 결과 성장 실업 분배의 악화로 국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정치 경제 사회의 갈등은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숙의정치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시민의 덕성과 공공이익을 핵심으로 하는 공화주의(共和主義)가 주목받는 것은 숙의정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숙의정치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정치 영역에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말을 잘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례가 많다. 틀린 말도 맵시있게 하면 이기기 쉽다. 정치적 위선에서처럼 ‘사적으로는 진실, 공적으로는 거짓(private truths, public lies)’이 정치를 지배한다. 마음속의 선호는 솔직한 것이지만 공개될 때는 위조·조작된다. 공화주의가 시민적 덕성을 중시하는 이유다.
숙의정치에는 이보다 근원적인,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집단적 성찰과 토론을 위해서는 정치적 의견·선호·생각 등을 또렷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로지 명시적 지식만이 숙의정치를 통해 정치 참여자끼리 소통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가운데 대부분(95%)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초의식적) 지식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머릿속에 지니고 산다.
암묵적 지식은 이리저리 궁리하거나 생각하지 않고서도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다. 인류가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선택받은 것은 그런 지식의 도움 덕분이다. 철학의 거대 산맥 중 하나는 명시적이고 의식적인 지식만을 참지식으로 여기고, 암묵적 지식은 지식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 철학 산맥의 한 지류가 사회주의와 간섭주의다.
그러나 수학자 겸 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상투적인 말이다. 이는 숙의정치의 치명적 오류를 통쾌하게 지적한 말이다. 생각 없이 수행할 행동의 수가 많을수록 문명은 더 발전한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암묵적 지식의 전달과 학습을 가능케 하는 게 시장을 비롯한 사적 세계에만 있는 비언어적 소통이다. 첫째,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해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습득할 수 있다. 이윤 기회를 포착하는 막강한 힘이 관찰이다. 관찰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업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둘째, 사람들은 모방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습득할 수 있다. 왜 성공했는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성공한 역할 모델을 모방해 비로소 그의 값진 경험을 배울 수 있다. 셋째, 암묵적 지식들은 시장 참여자의 구매·판매 행위를 거쳐 가격구조에 반영된다. 사람들이 시장가격에 적응하는 건 가격에 구현된 타인의 경험을 학습한 거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가격을 통한 비언어적 학습은 우리의 눈과 귀로는 물론 인지능력으로도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는 범세계적인 거시우주로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집단적인 성찰과 토론을 통해서만 지식이 분산(分散)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다수의 견해와 다른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자유가 확립된 사적 영역이 있을 때 지식은 가장 잘 분산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각자의 견해에 따라 행동할 영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말할 권리가 아니라 행동할 자유, 즉 경제적 자유가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의 현안을 해결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집단적 성찰과 논의, 즉 숙의정치가 아니라 자유의 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 공정·포용경제 등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강화해온 노동규제를 포함해 경제활동의 자유를 가로막는 온갖 규제를 싹 들어내야 한다. 좌파 정권의 견고한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과 친(親)북·중·러의 태도를 버리고 미·일 자유진영과의 동맹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재산권이 불안하면 아이디어의 실험과 확산이 불가능하다.
숙의정치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핵심이다. 시민의 덕성과 공공이익을 핵심으로 하는 공화주의(共和主義)가 주목받는 것은 숙의정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숙의정치에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정치 영역에서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말을 잘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례가 많다. 틀린 말도 맵시있게 하면 이기기 쉽다. 정치적 위선에서처럼 ‘사적으로는 진실, 공적으로는 거짓(private truths, public lies)’이 정치를 지배한다. 마음속의 선호는 솔직한 것이지만 공개될 때는 위조·조작된다. 공화주의가 시민적 덕성을 중시하는 이유다.
숙의정치에는 이보다 근원적인,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집단적 성찰과 토론을 위해서는 정치적 의견·선호·생각 등을 또렷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오로지 명시적 지식만이 숙의정치를 통해 정치 참여자끼리 소통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가운데 대부분(95%)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암묵적(초의식적) 지식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을 머릿속에 지니고 산다.
암묵적 지식은 이리저리 궁리하거나 생각하지 않고서도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다. 인류가 장구한 진화 과정에서 선택받은 것은 그런 지식의 도움 덕분이다. 철학의 거대 산맥 중 하나는 명시적이고 의식적인 지식만을 참지식으로 여기고, 암묵적 지식은 지식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그 철학 산맥의 한 지류가 사회주의와 간섭주의다.
그러나 수학자 겸 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상투적인 말이다. 이는 숙의정치의 치명적 오류를 통쾌하게 지적한 말이다. 생각 없이 수행할 행동의 수가 많을수록 문명은 더 발전한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암묵적 지식의 전달과 학습을 가능케 하는 게 시장을 비롯한 사적 세계에만 있는 비언어적 소통이다. 첫째,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해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습득할 수 있다. 이윤 기회를 포착하는 막강한 힘이 관찰이다. 관찰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업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둘째, 사람들은 모방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습득할 수 있다. 왜 성공했는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성공한 역할 모델을 모방해 비로소 그의 값진 경험을 배울 수 있다. 셋째, 암묵적 지식들은 시장 참여자의 구매·판매 행위를 거쳐 가격구조에 반영된다. 사람들이 시장가격에 적응하는 건 가격에 구현된 타인의 경험을 학습한 거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가격을 통한 비언어적 학습은 우리의 눈과 귀로는 물론 인지능력으로도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는 범세계적인 거시우주로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집단적인 성찰과 토론을 통해서만 지식이 분산(分散)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다수의 견해와 다른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자유가 확립된 사적 영역이 있을 때 지식은 가장 잘 분산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각자의 견해에 따라 행동할 영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말할 권리가 아니라 행동할 자유, 즉 경제적 자유가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의 현안을 해결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집단적 성찰과 논의, 즉 숙의정치가 아니라 자유의 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 공정·포용경제 등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강화해온 노동규제를 포함해 경제활동의 자유를 가로막는 온갖 규제를 싹 들어내야 한다. 좌파 정권의 견고한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과 친(親)북·중·러의 태도를 버리고 미·일 자유진영과의 동맹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재산권이 불안하면 아이디어의 실험과 확산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