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예술가 인생 결정하는 파란 구슬, 빨간 구슬
TV 프로 ‘전설의 고향’ 등에서 급박한 순간, 구슬을 던지면 펑!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거 많이 보셨지요? 그런 신묘한 구슬 비슷한 얘기 한 번 하겠습니다.

화가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동안 쓸 일상생활용 파란 구슬 5개와 예술용 빨간 구슬 5개를 지급받습니다. 파란 구슬은 약속시간 지키기, 단정한 옷차림, 상대방을 배려하고 칭찬하기, 부드럽고 정확한 단어로 자기 의사 전달하기 그리고 절제된 술자리 등 사람들을 만날 때 자신을 반듯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비용처럼 쓰이는 구슬입니다.

빨간 구슬은 예술 활동 전반에 쓰이는 건데 남 시선 상관하지 않고 수염이나 머리카락 기르기, 생각의 안테나를 높이 세워 예술 영감 잡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에 몰입해 날밤 새우기, 빗소리 들으며 웃거나 혹은 울며 미친 듯 그림 그리기 등 일반인이 잘 모르는 예술가적 삶을 유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화가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하루에 5개씩 배당받습니다. 예외도 있는데 고흐는 파란 구슬 1개, 빨간 구슬 9개쯤 받았지 싶습니다. 일상생활은 왕초보에 가깝고 예술적으로만 치우친 삶을 살았으니 말입니다. 피카소는 반칙같이 하루에 100개씩은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쇼맨십’으로 소위 ‘빠부대’를 몰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또 너무나 많은 명작까지 남겼으니 말입니다.

이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화가가 똑같이 하루에 파란 구슬, 빨간 구슬 5개씩 받습니다. 똑같은 선생님에게 배우고 똑같은 교재로 공부해도 성적 차이가 나듯 화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어진 시간과 공간,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그림과 화가의 레벨이 많이 달라집니다. 바로 그 구슬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말입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다 기분 좋게 헤어지는 일에 일상용 파란 구슬을 다 쓴 후 화실로 돌아와서는 아껴둔 예술용 빨간 구슬을 그림에 몽땅 쏟아붓는 날이 계속된다면 인품과 그림은 나날이 좋아질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오는 것 역시 당연할 것입니다.

반대로 일상에서 사람을 만날 때 괜히 예술용 빨간 구슬을 남발하는 다른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주로 술자리에서 그렇겠죠. “니들이 예술을 알아?”라는 식의 멘트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할 때 구슬을 하나 쓰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예술적인 용모와 복장에서 이미 하나 썼을 거고, 몇 남지 않은 구슬은 곧 이어질 예술적인 과한 행동에 쓰게 되겠지요. 그런 식으로 아깝게 5개의 빨간 구슬을 다 쓰고 화실로 돌아오면 이제 파란 구슬만 남아 있을 건데 그 구슬의 역할이란 일상용이어서 씻고 밥 먹고 TV보고, 뭐…. 게다가 바깥에서 충분히 예술적 활동(?)을 하고 온 터라, 예술 갈증은 이미 해갈이 됐으니 그림을 안 그려도 아쉬움 없이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이 누적된다면 그 결과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물론 과장된 비유이긴 하지만 여태 보고 듣거나 몸소 해본 일들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파란 구슬, 빨간 구슬을 어떻게 써 왔느냐의 누적이 예술가 자신들의 현재 위치일 수 있습니다. 운용도 실력이니까요. 아! 그 구슬은 ‘마음가짐’이라는 곳에서 매일 무료로 지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