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가족·국가 등 키워드로 읽는 한국영화史
1919년 10월 27일, 서울 단성사에서 한국인이 제작하고 감독하고 출연한 첫 영화 ‘의리적 구토’가 상영됐다. 오는 27일은 이른바 ‘한국영화’가 첫선을 보인 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영화는 한 세기 동안 우리의 삶과 역사를 어떻게 반영하고 그려왔을까.

영화평론가 박유희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는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에서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이란 다섯 가지 키워드로 한국영화사를 되돌아본다. 한국영화가 각 주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담아내 대중의 기억과 심상에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관련 영화의 텍스트 위주로 분석한다. 각 키워드는 다시 3~4개 하위 주제들로 나눠 살펴본다. 가령 빈도나 비중 면에서 한국영화의 중심에 놓인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 오빠, 누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다룬다.

저자가 ‘어머니’란 주제를 논하면서 가장 먼저 불러내는 배우는 최은희(1926~2018)다. 해방 이후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모성(母性) 표상의 주인공이어서다. 저자는 ‘마음의 고향’(1949),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이 생명 다하도록’(1960),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등 최은희가 출연한 작품 분석을 통해 그의 이미지가 ‘다소곳한 한국적인 여인상’에서 ‘전통의 미덕과 현대적 지성을 겸비한 어머니’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한국영화에서 그려진 ‘어머니’에 대한 논의는 최은희가 주연한 ‘마음의 고향’에서 나타난 ‘해방 공간의 이상적인 어머니’에서 시작해 ‘엄마’라는 호명을 거부하는 ‘미쓰백’(한지민 주연 영화)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이처럼 주제별로 수십 편의 영화와 주요 배우들을 소환해 한국영화가 시대의 요구와 욕망을 어떻게 드러내고 표출하면서 대중의 기억과 심상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책 제목처럼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를 완성해 간다.

‘영화 좀 봤다’는 독자라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영화’들을 떠올리고 삶을 되돌아볼 지점을 발견할 법하다. ‘한국영화 100년’을 되새기며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과함께, 584쪽, 3만3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