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 insight] 레바논 시위에 울려퍼진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지난 22일 레바논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현장. 이 긴박한 상황에서 시위를 하던 시민들 일부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비 샤크(Baby Shark) 뚜루루뚜루~.” 한국의 유아 콘텐츠 ‘핑크퐁’의 노래 ‘아기상어’ 영어 버전이었다.

레바논 시위대가 갑자기 ‘아기상어’를 부른 이유는 뭘까. 생후 15개월인 아들을 차에 태우고 나온 엄마가 시위 현장에 갇혔다. 아기가 시위대를 보고 겁에 질리자 엄마는 “아기가 있다. 너무 큰 소리를 내지 말아달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아기를 달래기 위해 차 창문 밖에 서서 상어가족을 불렀고, 아기는 활짝 웃어 보였다. 이 모습을 찍은 동영상은 전 세계에 퍼지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레바논이란 먼 중동 국가, 그것도 격렬한 시위 현장에서 울려펴진 경쾌한 동요와 율동은 우리가 그동안 미처 체감하지 못한 한류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K팝과 드라마정도인 줄 알았던 한류는 더 가볍고 막강한 파급력을 가진 캐릭터와 파생 콘텐츠로도 확산되고 있다.

레바논에서뿐만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아기상어’가 울려퍼지고 있다. 창단 이후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워싱턴 내셔널스가 ‘아기상어’를 응원가로 활용하고 있다. 선수들이 등장하고, 득점을 할 때마다 노래가 흐른다. ‘아기상어’를 올린 유튜브 채널 ‘핑크퐁’ 구독자 수는 2500만명에 달한다. 동영상 조회수는 103억회를 넘어섰다. 이달 초부터는 북미 도시 100곳을 돌며 ‘베이비샤크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있다. 아이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김희경의 컬처 insight] 레바논 시위에 울려퍼진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아기상어’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 나아가 어른들까지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핑크퐁’을 만든 업체 ‘스마트스터디’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냈다. ‘아기상어’는 북미 구전동요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뚜루루뚜루’라는 강렬한 후렴구, 캐릭터들의 재밌는 몸짓은 단숨에 그들을 사로잡았다. 아기상어를 흉내낸 ‘아기상어 댄스’는 어른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1년에 500~600개의 핑크퐁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꾸준히 유튜브에 노출시켰다. 유튜브를 통해 K팝이 급속히 확산된 것과 비슷하다. 장벽이 높은 미국 시장으로 퍼진 비결에는 필리핀 유모들의 힘도 컸다. 필리핀에서 이를 접한 유모들이 미국에서 일을 하며 아이들에게 핑크퐁을 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콘텐츠가 미처 예상치 못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핑크퐁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뽀로로, 라바 등 많은 캐릭터와 파생 콘텐츠가 국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인기를 지켜보며 살짝 부끄러워지는 것은 우리가 가졌던 태도 때문이다. 이 분야는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지원도 이뤄지지 않던 ‘소외 장르’였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새로운 흐름에 걸맞는 전략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막강한 한류가 탄생하고 있다. 콘텐츠만 훌륭하다면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는 현재, 더 이상 소외 장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맞춰 우리의 태도와 지원 체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