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 확대·해외여행 감소가 성장률 깎아내렸다고?
무상교육 확대, 해외여행 감소, 선선한 날씨….

지난 24일 올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기대를 밑도는 성적표를 내자 한국은행이 원인으로 지목한 것들이다. 이들 요인이 민간소비를 낮춰 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3분기 민간소비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7%로 2016년 4분기(1.5%) 후 약 3년 만에 가장 낮았다. 한은 설명대로면 무상교육 정책을 폐지하고 국민이 해외여행을 더 많이 가고, 여름 날씨가 더워지면 성장률이 오른다는 건데 이런 진단이 맞는 걸까.

무상교육 확대·해외여행 감소가 성장률 깎아내렸다고?
무상교육은 가계에서 내던 고등학교 교복비·납입금 등을 정부가 대신 부담해주는 정책이다. 정부는 이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를 올 3분기 1900억원으로 보고 있다. 지난 2분기 전체 민간소비 지출 232조원의 0.08%에 불과하다. 이 정도 금액이 민간소비 감소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줬는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교육비 1900억원 지원은 민간소비엔 마이너스지만 정부소비엔 플러스로 작용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무상교육이 민간소비 약화의 원인이 될지 모르지만 성장률 부진의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상교육의 정책 취지를 생각하면 한은의 진단은 더 이상하다. 이 정책을 시행하는 주요 원인은 가계 생계비 경감을 통해 민간 소비 여력을 늘려주는 데 있다. 한은의 논리대로라면 지난 2년간 2조2000억원의 국민 의료비를 절감시켰다는 ‘문재인 케어’를 비롯해 정부의 5대 생계비 경감 정책은 소비 진작 효과는 없고 경제에 부담만 주는 나쁜 정책이란 결론이 나온다.

해외여행 감소를 민간소비 둔화의 원인으로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거주자의 해외 소비는 국내총생산(GDP)과 무관하다. 일반적으로 해외여행이 줄면 국내 여행이 증가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은 설명은 과거 스스로 내린 진단과도 배치된다. 한은은 지난해 3월 ‘해외소비 변동요인 및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통해 “과도한 해외소비 증가는 국내 고용과 GDP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예전엔 해외여행이 너무 늘면 안 좋다고 했다가 최근에 줄어드니 부정적이라고 딴소리를 한 셈이다.

한은은 “올여름 날씨가 선선해 의류 지출이 줄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진 않았다. 한은 관계자는 “의류 소비가 줄긴 했는데 날씨가 어느 정도 영향을 줬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막연한 추정만으로 넘겨짚은 셈이다. 날씨가 선선하면 야외 활동과 이에 따른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핑계를 대기 바쁜 경제 진단은 정부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하락하자 “세계 경제 둔화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대외 여건 악화가 가장 큰 이유”라는 말을 반복해왔다.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에 대외 여건 악화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성장률 하락 속도는 세계보다 빠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성장률이 2017년 3.2%에서 올해 2.0%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성장률은 3.8%에서 3.0%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외 여건 외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등에 따른 기업 투자 환경 악화 등 내부 요인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몸이 아플 때는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간다. 경제 상황에 대한 안일한 진단과 핑곗거리 대기가 계속되면 경제침체를 극복할 길을 찾을 수 없다. 정부와 한은은 정말 무상교육을 폐지하고 해외여행이 늘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는 것인지 묻고 싶다.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