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끝) 흔들리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브렉시트 내년으로 연기
EU 체제 붕괴되나
영국에선 내년 1월 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년 안엔 브렉시트가 단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 찬성이 52%로 반대 48%를 넘었고, 보리스 존슨 총리가 마련한 탈퇴 방안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비교적 약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가 단행되면 영국은 1993년 EU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탈퇴하는 국가가 된다.
브렉시트는 유럽 국가를 정치공동체로 만들려는 것은 물론 단일 경제블록으로 묶으려는 유럽인의 꿈을 흔들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엔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덱시트(독일의 EU 탈퇴), 이탈렉시트(이탈리아의 EU 탈퇴) 움직임도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럽 통합은 세계 지역 블록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하나의 유럽 구상’이 처음 나온 건 20세기 초로 100년이 더 됐고,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처음 구체화된 1957년 로마조약을 기준으로도 60년이 넘었다.
EU의 전신은 1958년 결성된 EEC다. 독일(당시 서독)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처음 참여했다. 석탄과 철강의 공동시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후 회원국을 늘려 공동체를 키우고, 1967년 유럽공동체(EC)로 재탄생한다. 영국은 1973년 EC에 뒤늦게 가입했다.
유럽 통합의 비전은 점차 경제통합, 정치통합, 사회통합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1985년엔 EC 회원국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솅겐조약을 맺었다. 브렉시트의 핵심 명분 중 하나인 외국인 이주자 문제는 이 조항에서 비롯됐다. 1991년에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을 맺어 EU를 출범시키고 공동의 외교안보·정책 등 정치통합을 선포했다. 2002년에 이르러선 공동 화폐인 유로화를 도입해 경제통합 구상까지 달성한다. 상품시장은 물론 생산요소(노동력)의 이동 자유화, 외교·안보, 통화 통합까지 진정 ‘하나의 유럽’에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거대 통합은 회원국 내부에서 주권에 대한 의문을 점차 키우게 했다. 또 2012년 유럽 재정위기는 경제통합이라는 구호 속에 일부 회원국에 잠복했던 불안 요소를 드러냈다. 처음부터 유로화를 수용하지 않았던 영국은 EU의 관세동맹·단일시장에서도 빠져나와 직접 다른 국가와 양자 간 무역협정을 맺으려고 한다.
EU의 2위 경제국이자 핵심 회원국인 영국의 탈퇴는 반(反) EU 정서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경기 침체 속에 난민과 테러 문제까지 겹치면서 통합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브렉시트 과정의 혼란을 보며 다소 잠잠해진 프렉시트, 덱시트, 이탈렉시트 움직임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어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에서는 프렉시트 깃발이 다시 등장했고, 이탈리아는 EU와 재정 문제로 대립하며 유로화 대체 통화를 내놓겠다고 주장했다.
브렉시트로 유럽 내 분리 독립운동 움직임이 더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스페인의 카탈루냐, 북부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플랑드르 등은 꾸준히 독립 이슈가 터져 나오는 곳들이다. EU 탈퇴에 반대했던 스코틀랜드는 내년에 분리독립에 대한 주민투표를 다시 하겠다고 이달 공식 발표했다. 스코틀랜드자치정부는 2014년 같은 내용의 주민투표를 했지만 영국 탈퇴가 과반에 미달해 부결됐다. 회원국 탈퇴에 분리 독립까지 이어지면 EU는 사실상 붕괴 수순에 들어가는 것이다.
세계 경제 5위권인 영국의 EU 탈퇴는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 경제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 2034년까지 15년간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6.7%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영국 경제가 15년 동안 9.7%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했다. ‘노딜’ 때는 영국뿐 아니라 네덜란드(4%) 벨기에(3.5%) 아일랜드(7~8%) 등 인접국의 GDP 감소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됐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