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활동하다 소련서 투옥·강제노역·정신병동 감금…서방에 첫 폭로
1970년대 말 영국 망명 이후에도 모국 인권 상황 지속적 비판
舊 소련 반체제인사 탄압 실태 폭로했던 부콥스키 별세
구(舊)소련이 반체제 인사들을 정신병동에 가둬 약물을 투입해 무기력하게 만드는 체제 유지 방식을 처음으로 서방 세계에 폭로한 러시아 출신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블라디미르 부콥스키가 별세했다.

향년 76세.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부콥스키는 지난 27일 밤(현지시간)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부콥스키는 소련 당국이 의사들에게 허위로 정신병 진단서를 발급하도록 해 반체제 인사들을 정신병동에 감금해 탄압한 것을 처음으로 폭로한 인사 중 한 명이다.

1960년대에 잡지에 글을 쓰며 학생운동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부콥스키는 1963년 금서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소련 당국은 그가 정신적 문제가 있다면서 정신병동에 감금해버렸고, 이후 병원에서 나온 부콥스키는 1967년 다시 체포돼 이번에는 노동교화소로 보내져 3년을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그는 이미 35세 당시에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도합 12년을 감옥과 노동교화소, 정신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부콥스키는 구소련이 정신병을 허위진단해 반체제인사들을 탄압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한 인사로 서방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71년 6명의 반체제 인사들의 정신병력이 기록된 의료 문서를 빼돌려 서방에 제공하면서 소련의 가혹한 체제 유지 방식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소련에서 추방된 뒤 1978년 펴낸 회고록을 통해 강제노역과 정신병동에서 갇혀 지낸 경험을 구체적으로 알렸다.

소련의 정신과 의사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라 반체제 인사들에게 정신병을 허위로 진단하고 이들을 정신병동에 가두는 데 협조했다.

이렇게 갇힌 반체제 인사들은 병원에서 강력한 정신의학 약물을 투약받으면서 무력하게 지냈다.

이런 방식은 196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해체 직전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부콥스키는 일련의 활동으로 소련에서 1976년 징역형을 또 언도받은 뒤 추방돼 영국으로 망명했다.

생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가 전체주의 체제였던 구소련과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푸틴을 자주 비판했다.

2008년 러시아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후보 자격을 얻지는 못했다.

말년에는 아동 포르노 사건에 휘말려 2014년 영국 경찰에 체포돼 기소됐지만, 그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부콥스키는 러시아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은 해커들의 공격으로 없는 죄를 뒤집어쓴 것이라고 주장했고, 그의 재판은 신병 악화로 중단됐다.

국제인권단체 메모리알은 트위터에서 "소련은 부콥스키를 반체제 운동의 훌리건이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부르며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애도했다.

러시아의 야당 지도자 드미트리 구드코프도 이날 부콥스키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트위터에서 그의 회고록을 읽을 것을 지지자들에게 권하면서 "이 책의 단 하나의 단어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