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문재인 정부엔 '경제 영토' 개념이 없다
수출이 최근 10개월 연속 마이너스(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했다. 올 들어 9월까지 누적 수출은 4061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나 줄었다. 내일 발표되는 10월 수출 실적도 이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인다. 해외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다.

경제는 얼마나 넓은 시장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한 대통령 가운데 한 분이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는 1990년대 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 등 지역주의 무역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자 재빨리 자유무역협정(FTA) 대열에 뛰어들었다.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11월 열린 대외경제조정위원회 회의가 전환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 회의에서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칠레 터키 등 4개국과 FTA를 체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가운데 산업이 서로 보완적이고 농산물 피해가 적은 칠레와 먼저 협상을 진행했다. 2002년 타결한 칠레와의 FTA는 한국의 첫 FTA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장사뿐”이라며 “장사를 하려면 시장을 확보해야 하고 시장 속에 파고들어 가려면 FTA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강대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를 흔히 ‘샌드위치 신세’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양쪽에 거대한 시장을 두고 있는 ‘도랑 속의 소’가 한민족이라고 생각했다”며 “도랑 양쪽을 아무런 간섭 없이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권리가 이를테면 FTA”라고 설명했다.

이후 정부는 ‘경제 영토’를 넓히는 전략을 꾸준히 밀어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2007년), 이명박 정부는 유럽연합(2010년), 박근혜 정부는 중국(2014년)과 FTA를 맺었다. 국회 비준을 거치는 과정에서 발효가 늦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FTA는 2000년대 들어 한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 흐름은 문재인 정부 들어 멈췄다. 남은 주요국인 일본과 FTA 협상을 진행하기는커녕 ‘국교 단절’에 가까운 수준으로 후퇴했다. 중국과는 2017년 ‘사드 보복’ 때 악화된 관계를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 눈치를 보는 한국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은 경제 영토 넓히기와는 거리가 멀다. 북한과 ‘평화경제’를 이루는 한반도 신(新)경제구상은 선언 수준이다. 인도 및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과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신남방정책, 러시아와 몽골 등을 연결하는 신북방정책은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0.4%(전분기 대비)에 그쳤다. 정부가 재정을 적극 투입했는데도 이 정도다. 올해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출 감소와 이에 따른 설비투자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기업이지만 ‘시장의 경계’를 넓히는 일은 국가가 할 일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명을 연결한 무역로의 탄생은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중국 한(漢)나라, 서쪽에 파르티아와 로마 제국이 등장한 시기와 맞물린다. 경제는 민간의 자연스러운 활동이지만 그 근거지는 국가가 만든다.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해외 시장 확대는커녕 국내 시장에서 ‘새 길’을 내주는 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원격의료와 빅데이터 등 신산업은 기득권과 규제에 꽉 막혀 있다. 렌터카 기반 차량호출 서비스인 ‘타다’는 불법영업 혐의로 기소됐다.

정부는 최근 개발도상국 특혜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국가로서 당연히 내려야 할 결정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특혜를 포기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 활동의 폭과 깊이를 지금보다 훨씬 더 키워야 한다.

농민단체 반발을 무마하는 것은 대증요법이다.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는 선진국으로 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경제 영토’ 개념부터 되살려야 한다.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