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사람이 먼저인가, 사람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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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이면의 경제 실상은 더 암울
잘못된 공약 고집한 대가 너무 커
경제팀 쇄신하고 전권 위임해야
오형규 논설위원
잘못된 공약 고집한 대가 너무 커
경제팀 쇄신하고 전권 위임해야
오형규 논설위원
요즘처럼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懷疑)가 든 적도 없다. ‘기레기’라는 ‘도매금 비난’ 탓이 아니다. 하루하루 나쁜 소식들을, 싫어도 샅샅이 살펴야 하는 데서 오는 직업적 회의다. 쏟아지는 경제지표마다 허탈하고, 그럼에도 요지부동인 ‘정신승리 정부’를 보면 맥이 빠진다.
‘9월 소비 21개월 만에 최대 감소, 산업생산 0.4% 감소, 건설투자 2.7% 감소, 소비자물가 0.4% 하락, 비정규직 1년 새 87만 명 급증, 3분기 상장사 영업이익 54% 급감, 수출 11개월 연속 감소, 경기심리지수 10년5개월 만에 최악 … .’
물 먹은 솜처럼 경제가 총체적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생산, 투자, 소비, 수출, 고용 어디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징후가 안 보인다. ‘1%대 저성장’도 걱정이지만 진짜 염려스러운 것은 국내총소득(GDI)이 세 분기 연속 0.5%(전년동기비) 이상 감소세라는 점이다. 국내총생산에 무역손익을 더한 GDI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 구매력이다.
‘평균의 함정’을 내포한 통계 이면의 실상은 더 심각하다. 도심 상가 1층까지 나붙은 ‘임대’ 표지는 점점 늘어만 간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3분기 전국평균 5.9%지만 전북은 12.1%, 군산은 25.1%에 달한다. 서울 이태원도 25%이고, 울산에는 30%가 넘는 상권도 있다. 오피스 공실률도 전국 평균이 11.8%지만 충북 전남 경북은 25% 안팎이고, 광주 울산 대구 강원도 20%에 육박한다. 이런 숫자에는 어떤 눈물과 좌절이 담겨 있을까 먹먹해진다.
민간의 활력 저하가 너무도 명백해, 이제는 어떤 수사(修辭)로도 감출 수 없는 지경이다. 아무리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부인해도 국민의 무력감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직원 27명을 6명으로 줄이고 부부, 가족이 함께 뛰어야 하니 나날이 전쟁터여서 살맛을 잃었다”는 음식점주의 한숨도 안타깝지만, 일자리를 잃은 직원 21명은 어떻게 살까 생각하면 더 안타깝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헛된 공약에 집착해 국민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펴온 경제정책 기조를 보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 사람이 먼저다’로 읽게 한다. ‘촛불 지분’을 가진 노동·이념·정치단체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며’ 나홀로 호황이다. 조합원 100만 명을 돌파한 민노총, 중앙·지자체 주변의 온갖 위원회·자문기구, 태양광 보조금 사업 등이 거대한 좌파 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 20년, 50년 집권의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
어떤 정부든 경제 실패의 근본원인은 ‘사람’에 있다. 인사권자의 편협하고 오도된 경제관과 좁은 인재풀이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전문가의 기용을 막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정책실장은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등 참여연대 출신의 돌려막기였고, ‘586 참모’들이 이념적 필터로 정책을 재단하면서 각 부처에 강한 입김을 행사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경제부총리는 ‘얼굴마담’ 수준이고, 여당 출신 장관들 외에는 목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
그렇게 2년 반을 허송했다.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로선 경제실패를 만회할 시간이 별로 없다. 타조처럼 머리를 파묻고 “우리는 다르다”고 잘못된 정책을 고집해봐야 국민에게는 무능한 줄도 모르는 ‘우월성 착각’으로 비칠 뿐이다. 국민은 이미 실력을 다 안다. 혹여 경제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나라 미래가 달린 문제를 더 이상 정치의 종속변수로 삼아선 안 된다.
대통령은 개각을 천천히 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참에 정부와 청와대 경제팀 쇄신이란 강력한 신호를 기업과 시장에 보내야 한다. 공약집은 덮고 진짜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게 더 이상의 추락을 막는 길이다. “합당한 인물을 쓸 수 있다면 천하를 차지하고, 합당하지 못한 사람을 쓰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관자>) 언제까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게 할 텐가.
ohk@hankyung.com
‘9월 소비 21개월 만에 최대 감소, 산업생산 0.4% 감소, 건설투자 2.7% 감소, 소비자물가 0.4% 하락, 비정규직 1년 새 87만 명 급증, 3분기 상장사 영업이익 54% 급감, 수출 11개월 연속 감소, 경기심리지수 10년5개월 만에 최악 … .’
물 먹은 솜처럼 경제가 총체적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생산, 투자, 소비, 수출, 고용 어디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징후가 안 보인다. ‘1%대 저성장’도 걱정이지만 진짜 염려스러운 것은 국내총소득(GDI)이 세 분기 연속 0.5%(전년동기비) 이상 감소세라는 점이다. 국내총생산에 무역손익을 더한 GDI는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 구매력이다.
‘평균의 함정’을 내포한 통계 이면의 실상은 더 심각하다. 도심 상가 1층까지 나붙은 ‘임대’ 표지는 점점 늘어만 간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이 3분기 전국평균 5.9%지만 전북은 12.1%, 군산은 25.1%에 달한다. 서울 이태원도 25%이고, 울산에는 30%가 넘는 상권도 있다. 오피스 공실률도 전국 평균이 11.8%지만 충북 전남 경북은 25% 안팎이고, 광주 울산 대구 강원도 20%에 육박한다. 이런 숫자에는 어떤 눈물과 좌절이 담겨 있을까 먹먹해진다.
민간의 활력 저하가 너무도 명백해, 이제는 어떤 수사(修辭)로도 감출 수 없는 지경이다. 아무리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부인해도 국민의 무력감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직원 27명을 6명으로 줄이고 부부, 가족이 함께 뛰어야 하니 나날이 전쟁터여서 살맛을 잃었다”는 음식점주의 한숨도 안타깝지만, 일자리를 잃은 직원 21명은 어떻게 살까 생각하면 더 안타깝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헛된 공약에 집착해 국민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펴온 경제정책 기조를 보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 사람이 먼저다’로 읽게 한다. ‘촛불 지분’을 가진 노동·이념·정치단체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며’ 나홀로 호황이다. 조합원 100만 명을 돌파한 민노총, 중앙·지자체 주변의 온갖 위원회·자문기구, 태양광 보조금 사업 등이 거대한 좌파 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 20년, 50년 집권의 토대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
어떤 정부든 경제 실패의 근본원인은 ‘사람’에 있다. 인사권자의 편협하고 오도된 경제관과 좁은 인재풀이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전문가의 기용을 막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관장하는 정책실장은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등 참여연대 출신의 돌려막기였고, ‘586 참모’들이 이념적 필터로 정책을 재단하면서 각 부처에 강한 입김을 행사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경제부총리는 ‘얼굴마담’ 수준이고, 여당 출신 장관들 외에는 목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
그렇게 2년 반을 허송했다.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로선 경제실패를 만회할 시간이 별로 없다. 타조처럼 머리를 파묻고 “우리는 다르다”고 잘못된 정책을 고집해봐야 국민에게는 무능한 줄도 모르는 ‘우월성 착각’으로 비칠 뿐이다. 국민은 이미 실력을 다 안다. 혹여 경제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나라 미래가 달린 문제를 더 이상 정치의 종속변수로 삼아선 안 된다.
대통령은 개각을 천천히 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참에 정부와 청와대 경제팀 쇄신이란 강력한 신호를 기업과 시장에 보내야 한다. 공약집은 덮고 진짜 전문가에게 믿고 맡기는 게 더 이상의 추락을 막는 길이다. “합당한 인물을 쓸 수 있다면 천하를 차지하고, 합당하지 못한 사람을 쓰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관자>) 언제까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게 할 텐가.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