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란 이사를 간 뒤 가족, 친척, 지인 등을 불러 잔치를 하는 옛 풍습을 뜻한다. 집들이에 초대를 받으면 화장지, 세재 등을 구입해 이사를 축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 받고자 하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집들이를 하는 가정이 줄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개인 SNS에 이사 소식을 올리는 '랜선 집들이' 정도로 바뀌었다.
최근 결혼한 20대 여성 김모씨 또한 "집들이를 굳이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다. 김 씨는 남편과 매일 밤 싸웠다. 최근 퇴사한 남편이 전 회사 동기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요즘 세상에 집들이 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며 "가족, 친척까지는 할 수 있다고 쳐도, 전 직장 동료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남편은 "동기들이 집 구매할 때도 많이 조언해 줬고, 너랑 연애할 때도 상담 많이 들어줬다"면서 "집들이를 꼭 하기로 약속했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결국 돌아오는 금요일,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직장인인 김 씨는 도저히 집들이 음식을 해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음식은 모두 배달하기로 했다.
김 씨 친정 어머니는 집들이 사실을 알고, '아무리 바깥 음식을 사온다고 해도 밥이나 찬거리는 필요하다'며 신혼집에 들러 음식을 해놓고 가겠다고 한 것이다.
김 씨는 "결혼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도 못했는데 몇 개월만에 딸네 집에 와서 밥하고 가라고 하기도 속상했다"면서 "남편이 이직 준비 중이라 일도 쉬고 있는데, 서로 불편할 것 같아 거절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의 걱정에 김 씨는 '새벽배송'이 가능한 업체에서 반 조리 음식을 주문하기로 하고 남편에게 밥 짓기를 부탁했다. 최소한의 정성을 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남편의 대답에 김 씨는 뒷목을 잡았다. 남편은 "너 출근하면서 밥 해놓고 출근해"라며 "음식도 많이 산 것 같은데 즉석밥 사 먹으면 안 돼?"라고 말한 것.
김 씨는 웃으면서 "여보 오랜만에 실력발휘 좀 해 줘"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남편은 "지금 나 일 쉰다고 전업주부처럼 부려 먹는거야?"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 "나 퇴사한지 2개월 됐어. 그동안 너 바쁘다고 밥 한번 차려준 적 있어?"라고 따졌다.
남편은 또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너 퇴근하는 시간만 기다리는데, 넌 집에 있는 나 생각한적 있어? 퇴근하고 손수 밥 차려준 적 있느냐"면서 "너무 이기적이다.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 씨는 어이가 없었다. 남편이 하자고 한 집들이에서 '밥 짓기'라는 사소한 일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날 줄이야. 거기다 남편의 입에서는 논점에서 벗어난 말이 쏟아져 나왔다.
김 씨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쌓인건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놈의 밥 한 번 하라고 했다고, 말도 않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남편 혼자 있어서 맛있는 것 못 챙겨 먹을까봐 매일 퇴근길엔 아무리 피곤해도 요깃거리 사서 집으로 갔었다"라며 "남편의 속마음을 들으니 우울해졌다. 0점 짜리 부인인 것 같아서"라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네티즌들은 "집에서 놀면서 열심히 일하고 온 아내에게 밥 한끼 차려주지 않는 남편이 더 문제", "무개념에 자격지심까지 어이가 없다", "집들이는 취소하는 게 좋겠다", "직장다니는 사람이 백수한테 퇴근하고 밥도 차려줘야 하나", "이직이 마음처럼 잘 안되어서 남편이 의기소침해 진 듯" 등의 반응을 보이며 함께 분노했다.
※[와글와글]은 일상 생활에서 겪은 황당한 이야기나 어이없는 갑질 등을 고발하는 코너입니다.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사연이 있다면 보내주세요. 그중 채택해 [와글와글]에서 다룹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보내실 곳은 jebo@hankyung.com입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