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한·일 간 교역에만 피해가 가는 게 아니다" [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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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 한목소리로 비판한 한·일 경제학자들
“일본의 대한(對韓)수출규제는 단순한 무역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와 기술이전, 지식의 교류에도 막대한 부정적 효과를 미치는 조치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는지 기준은 여전히 불분명하다.”(도도 야스유키 와세다대 교수)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상황에서 일본정부의 수출규제가 커지면서 주식시장, 외환시장까지 불확실성이 확산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좋은 관계가 아시아 경제번영과 안정의 기반인 만큼 정치적 긴장관계가 이를 위협해선 안 된다.”(긴쿄 다쿠지 고베대 교수)
1일 도쿄 가스미카세키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DBI)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이 모여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주제로 학술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ADB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후쿠다 신이치 도쿄대 교수와 토도 야스유키 와세다대 교수, 긴쿄 타쿠지 고베대 교수, 데라다 다카시 도지샤대 교수,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교수 등이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선 이종화 고려대 교수, 안충영 중앙대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현석 연세대 교수,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 거시금융실장, 허윤 서강대 교수 등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양국 정치권이 정치적 목적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건드리며 양국 간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에 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올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로 시작된 양국 간 대립이 양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큰 손실을 일으키고 있다는데도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수출규제 조치를 일본 학자들도 날카롭게 비판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도도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 양국이 상대방에 대한 미움을 강화하면서 거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양국 간 대립은 양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막대한 부정적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양국 간 대립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무역손실 뿐 아니라 투자, 기술교류, 국제적 지식이전에까지 광범위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양국 간의 대립이 상호 배타주의를 강화하고, 이것이 다시 경제적 정체상태를 유발하는 1930년대식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규제를 강화한 기준과 이유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 수출업자들은 여전히 수출허가가 나올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지적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을 터이지만 일본 국민과 일본 소비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그 같은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긴쿄 고베대 교수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증진하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며 “양국의 정치적 긴장관계가 아시아 경제번영의 근간이 한·일 경제협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요시노 나오유키 ADB연구소 소장은 “아시아 지역 내 금융투자 부분에서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은행 등으로 빌린 자금의 25%가량은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며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상호간 투자 흐름은 2017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 대립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전략적 움직임까지 자극하고 있다”며 “양국 정상이 더 이상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고 좋은 관계로 돌아가자는 선언을 하고 양국 각급 레벨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다각도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차롱폽 수상칸 전 태국 재무장관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라며 “양국이 모두 화해와 타협의 길을 택하면 양국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에도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일방적 승리를 노리는 강경책을 고집해 양국 모두에 최악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한국 측 참석자들도 정치적 문제에서 불거진 양국 관계의 대립이 경제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안충영 중앙대 교수는 “양국 정상이 과거사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기 위한 만남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기업을 비롯한 민간 측면에서의 교류도 강화돼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이 중국과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면서 한국과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도 “정치인들이 경제를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지렛대로 삼아 경제적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조치들이 세계 각국에서 잇따르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반한감정을 이용할수록 한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 수출규제로 양국 간 대립이 본격화한지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양국 간 대립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양국 경제학자들의 지적을 양국 정치권이 잘 받아들여 하루빨리 바람직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한국과 일본의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상황에서 일본정부의 수출규제가 커지면서 주식시장, 외환시장까지 불확실성이 확산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좋은 관계가 아시아 경제번영과 안정의 기반인 만큼 정치적 긴장관계가 이를 위협해선 안 된다.”(긴쿄 다쿠지 고베대 교수)
1일 도쿄 가스미카세키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DBI)에는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이 모여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주제로 학술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ADB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후쿠다 신이치 도쿄대 교수와 토도 야스유키 와세다대 교수, 긴쿄 타쿠지 고베대 교수, 데라다 다카시 도지샤대 교수,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교수 등이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선 이종화 고려대 교수, 안충영 중앙대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현석 연세대 교수,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 거시금융실장, 허윤 서강대 교수 등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양국 정치권이 정치적 목적에서 민족주의 감정을 건드리며 양국 간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에 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올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로 시작된 양국 간 대립이 양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큰 손실을 일으키고 있다는데도 인식을 같이했습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수출규제 조치를 일본 학자들도 날카롭게 비판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도도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 양국이 상대방에 대한 미움을 강화하면서 거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양국 간 대립은 양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도 막대한 부정적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양국 간 대립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무역손실 뿐 아니라 투자, 기술교류, 국제적 지식이전에까지 광범위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양국 간의 대립이 상호 배타주의를 강화하고, 이것이 다시 경제적 정체상태를 유발하는 1930년대식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규제를 강화한 기준과 이유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 수출업자들은 여전히 수출허가가 나올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지적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을 터이지만 일본 국민과 일본 소비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그 같은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긴쿄 고베대 교수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증진하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며 “양국의 정치적 긴장관계가 아시아 경제번영의 근간이 한·일 경제협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요시노 나오유키 ADB연구소 소장은 “아시아 지역 내 금융투자 부분에서 일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은행 등으로 빌린 자금의 25%가량은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며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상호간 투자 흐름은 2017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라타 슈지로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 대립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전략적 움직임까지 자극하고 있다”며 “양국 정상이 더 이상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고 좋은 관계로 돌아가자는 선언을 하고 양국 각급 레벨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다각도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차롱폽 수상칸 전 태국 재무장관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라며 “양국이 모두 화해와 타협의 길을 택하면 양국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에도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일방적 승리를 노리는 강경책을 고집해 양국 모두에 최악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한국 측 참석자들도 정치적 문제에서 불거진 양국 관계의 대립이 경제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안충영 중앙대 교수는 “양국 정상이 과거사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기 위한 만남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기업을 비롯한 민간 측면에서의 교류도 강화돼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이 중국과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면서 한국과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않고 있는 상황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도 “정치인들이 경제를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지렛대로 삼아 경제적 관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조치들이 세계 각국에서 잇따르고 있다”며 “일본에서도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반한감정을 이용할수록 한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점을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 수출규제로 양국 간 대립이 본격화한지 4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양국 간 대립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양국 경제학자들의 지적을 양국 정치권이 잘 받아들여 하루빨리 바람직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