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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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대치동 학원가가 무면허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킥라니(킥보드와 고라니의 합성어)’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원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든 중·고등학생들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니면서 인도 위 보행자들을 위협하거나 안전장비 없이 차도에서 위험천만한 주행을 하고 있어서다. 안전 관리 속에서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을 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도’에서 ‘6차선 도로’까지 활보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학생 2명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학생 2명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 사거리. 저녁 시간이 되자 교복을 입은 채 전동킥보드를 탄 학생 두 명이 거리에 나타났다. 주변 아파트 단지의 인도에서 전동킥보드를 몰던 이들은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이르자 ‘보행자’처럼 파란불 신호를 기다렸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이들은 ‘차도 위의 운전자’가 됐다. 학생들은 헬멧 등의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시속 20여㎞로 6차선 도로 한 편에서 주행했다. 저녁 시간마다 전동킥보드를 이용한다는 이모군(16)은 “전동킥보드는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어 자전거보다 훨씬 편하다”며 “부모님이 차량을 태워주지 않을 때 전동킥보드를 끌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원가를 활보하는 ‘킥라니’들은 사실상 불법운행을 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된다. 제1·2종 운전면허나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를 가져야 운전할 수 있다. 이 중 연령 제한이 가장 낮은 원동기 운전면허는 만 16세 이상에만 허용된다. 생일이 지나지 않은 고등학교 1학년생은 전동킥보드를 몰 수 있는 법적 자격이 없다.

면허 확인 절차 없어 초등학생도 구입가능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운전자 2명이 차도로 주행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운전자 2명이 차도로 주행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이용자들은 전동킥보드에 면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부 학부모들은 오히려 자녀들에게 전동킥보드를 선물하며, 이용을 장려하기도 한다. 대치동 학원가로 통학하는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지난 4월부터 학원가에서 불법 주정차 단속이 강화돼 자녀를 차량으로 통학시키기가 어려워졌다”며 “아이도 좋아했고 가격도 20만원대에 불과해 전동킥보드를 기분전환 겸 통학용으로 사줬다”고 말했다.

판매자들은 심지어 ‘어린이 전동킥보드’를 홍보하면서 불법 주행을 장려하고 있다. 일부 소셜커머스 사이트에는 전동킥보드가 ‘어린이용’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구매시 면허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을 뿐더러 운행을 위해 면허가 필요하다는 내용 고지도 없다. 상품평에는 “초등학생 자녀에게 선물해줬더니 좋아한다”는 댓글까지 달려있다.

무면허 운전이 가능한 건 공유 전동킥보드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서울 압구정동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동킥보드가 오토바이, 승용차와 연달아 교통사고를 내는 등 대책 마련 요구가 잇따르자 강남경찰서는 지난 8월 ‘전동킥보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업체 간담회’를 열었다. 경찰은 공유서비스 업체 6곳과 합의해 면허증 승인이 확인되기 전까지 전동킥보드 이용을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면허 인증 시스템을 갖춘 곳은 서울 전동킥보드 공유 업체 13곳 중 6곳에 불과했다.

무면허 운전이 일반화된 사이 전동킥보드 사고는 급증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전동킥보드 사고건수는 2016년 49건에서 2018년 258건으로 5배 넘게 늘었다. 대치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하는 주민 이모씨(46)는 “헬멧 착용도 안하고 두 명이 전동킥보드 한 대에 합승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며 “전동킥보드를 탄 학생의 가방과 부딪쳐 스마트폰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아무런 사과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5일 한남대교 남단의 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운전자가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장면.  /강남경찰서 제공.
지난 8월 5일 한남대교 남단의 한 도로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운전자가 오토바이와 충돌하는 장면. /강남경찰서 제공.
“안전기준 마련 내년은 돼야”

업계에선 전동킥보드 이용 인구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운전 공간이 마땅치 않은 여건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동킥보드 공유업체 관계자는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자전거’에 속하다보니 현행법상 차도에서 통행해야 하는데 속도 제한이 시속 25㎞에 불과해 차량 주행 시 교통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며 “인도에선 ‘도로 위 무법자’ 소리를 듣고 차도에선 ‘킥라니’ 취급을 받는 신세”라고 말했다.

전동킥보드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이 전동킥보드 등에 ‘개인형 이동수단’이라는 범주를 만들어 자전거도로에서 개인형 이동수단을 통행할 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전동킥보드는) 자전거와 비슷한 수준의 속도와 위험성을 갖고 있으므로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게 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올해가 지나야 (전동킥보드 관련) 안전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법제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현/김남영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