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는 1938년 ‘조선교육령’을 발표하고 각급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을 금지시켰다. 그는 조선어학회 사전 편찬 전임위원으로 활동하던 정인승 선생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권유를 받고 새 힘을 얻었다. 1941년부터 사전 편찬 사업에 본격 참여했다. 일제는 1942년 조선어학회 주요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다. 사전 편찬은 중단되고 조선어학회는 강제 해산됐다. 정태진 선생도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그는 동료들과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고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다시 집중했다. 하지만 1952년 11월 2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5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아야 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자 안쓰기 문제> <중등국어독본> <조선고어방언사전> 등이 있다. 정부는 1962년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