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4부요인 해당하나 빈 협약 및 국제관습법상 면책대상 아냐
[팩트체크] '기내 성추행혐의' 몽골헌재소장도 외교면책 대상?
경찰이 우리나라 국적기에서 항공사 여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몽골 헌법재판소장을 '면책특권' 대상이라고 착각해 체포하지 않고 석방하면서 형법상 면책특권을 받는 외국인의 범위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오드바야르 도르지 소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8시 5분께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20대 여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경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항공사 측의 신고를 받고 공항으로 출동했지만, 주한몽골대사관 측은 '도르지 소장 일행이 외교관에 해당해 면책특권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경찰은 소장을 체포하지 않고 석방했다.

경찰의 석방 조치에 대해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은 해당 국가 공관 소속 외교관에 대해서만 면책특권을 적용하도록 한 것 아니냐'는 등의 지적이 나왔다.

이 사건 관련 기사의 댓글 중에는 경찰 조치가 부적절했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확인결과 경찰 조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옳았다.

우리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처벌이 면책되는 외국인은 빈협약이 적용되는 대사관 등 공관 주재 외교관과, 국제관습법에 따라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국가원수급 인물로 제한되는데 일단 한국 정부 당국은 도르지 소장이 빈 협약으로도, 국제관습법상으로도 면책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도르지 소장이 빈협약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지만,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국가원수급 인물인지는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선 몽골 헌법이 몽골 헌법재판소를 정부와 국회, 법원과 함께 독립적 헌법기관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도르지 소장은 국가원수급인 4부 요인으로서 면책대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 형법은 국적 항공기 안에서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적용되지만, 국제관습법에 따라 외교와 관련해 타국의 국가원수에 준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치외법권'을 인정하는데, 도르지 소장도 그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는 도르지 소장이 빈협약 뿐만 아니라 국제관습법에 따른 면책대상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1일 "도르지 소장은 한국 상주공관 소속이 아니라 빈협약 적용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국가원수급에 적용되는 국제 관습법상의 면책특권도 대통령·행정부 수반·외교부 장관 정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도르지 소장과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학계도 외교부와 같은 입장이다.

국제법 전공인 이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원수급에 면책특권을 주는 것은 적대적 국가의 외교 관련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주자는 취지에서 형성된 국제관습"이라며 "국가원수, 행정부 수반, 외교장관 등 외교업무와 관련된 인물에게만 인정된다"고 말했다.

결국 도르지 소장이 면책특권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파악되면서, 경찰은 이날 인도네시아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 환승구역 안에 머무르고 있는 도르지 소장을 임의동행 형식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