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진출 후 첫 프로기사와 대국…"이 정도면 잘했지"
녜웨이핑 "30년 전의 빚을 갚았다"
30년 만에 재현한 응씨배…조훈현, 이번엔 녜웨이핑에 석패
'바둑황제' 조훈현(67) 9단이 중국의 기성 녜웨이핑(68)에게 30년 만의 설욕을 허용했다.

조훈현 9단은 2일 서울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초대 응씨배 제패 30주년 특별대국'에서 녜웨이핑 9단에게 344수 만에 흑 13점 패배를 당했다.

두 '바둑의 전설'이 반상에서 마주한 것은 2015년 제2회 명월산배 결승전 이후 4년 2개월 만이다.

두 기사는 초반부터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으며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나 대국 중반 상변 전투에서 조훈현 9단이 실수하면서 균형이 녜웨이핑 9단 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조훈현 9단이 제한시간을 초과해 벌점 4점을 공제 당하면서 녜웨이핑 9단이 승리를 가져갔다.

이 대국은 '응씨룰'을 차용했다.

제한시간 각 1시간을 제공하고, 20분을 초과하면 2집을 공제하고, 다시 20분을 초과하면 2집을 또 공제하는 방식이다.

30년 만에 재현한 응씨배…조훈현, 이번엔 녜웨이핑에 석패
대국 승리 후 녜웨이핑 9단은 "30년 전의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녜웨이핑 9단은 1989년 9월 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응씨배 결승 최종 5국에서 조훈현 9단에게 패했다.

조훈현 9단은 종합전적 3승 2패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응씨배는 대만의 고(故) 잉창치 회장이 1988년 창설한 역대 두 번째 메이저 세계대회로, 최다 상금이 걸려 있고 4년 주기로 열려서 '바둑 올림픽'으로 널리 알려졌다.

당시 세계바둑은 중국이 종주국 자존심을 지키는 가운데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초대 응씨배에 출전한 한국 기사는 조훈현 9단 혼자였다.

조훈현 9단은 당대 세계 최고수들을 연파하고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인 녜웨이핑 9단은 1980년대 후반 중일수퍼대항전에서 11연승을 달리며 '철의 수문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조훈현 9단의 우승은 한국 바둑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사건'이었다.

조훈현 9단은 응씨배 우승 후 귀국할 때 김포공항에서 서울 종로의 한국기원까지 카퍼레이드로 이동하며 전 국민의 환호와 축하를 받았다.

30년 만에 재현한 응씨배…조훈현, 이번엔 녜웨이핑에 석패
조훈현 9단의 초대 응씨배 우승을 계기로 한국 바둑도 세계 바둑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조훈현 9단을 시작으로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이 세계 최강 계보를 이어갔다.

녜웨이핑 9단은 "초대 응씨배에서 조훈현 9단이 우승한 덕분에 한국의 바둑이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훈현 9단은 "너무 오랜만에 바둑을 둬서 얼떨떨하다"며 웃었다.

조훈현 9단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이날 처음으로 프로기사와 공개 대국을 했다.

국회의원은 영리 업무 겸직할 수 없어서 조훈현 9단은 현재 프로기사로는 휴직 중이다.

조훈현 9단은 "바둑에서는 떠나 있기 때문에 감이 하나도 없다.

수가 안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전성기였으면 잘했을 것"이라면서도 "이 정도면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기원과 바둑TV는 제2회 바둑의 날(11월 5일)을 기념해 이번 특별 대국을 마련했다.

추궈홍 주한중국대사와 김인 9단은 공동 심판장을 맡아 두 바둑 전설의 재회를 축하했다.

30년 만에 재현한 응씨배…조훈현, 이번엔 녜웨이핑에 석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