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여명에 홀린 붓질…"깨어나는 희망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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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판의 연금술사' 강승희 교수
6~20일 노화랑에서 첫 유화전
6~20일 노화랑에서 첫 유화전
반짝이는 불빛이 도심의 하늘과 건물 사이로 마술처럼 번지며 새벽을 가른다. 빨갛게 차오른 점등이 건물에 일렁이나 싶더니 점차 뽀얀 기운으로 바뀐다. 도심 공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막 잠에서 깨어난 듯 화면에서 맴돈다. ‘동판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판화가 강승희 추계예술대 교수(60·사진)의 유화 작품 ‘새벽’이다.
1989년부터 한결같이 판화가를 고집해온 강 교수가 오는 6~20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첫 유화 작품전을 연다. ‘여명(黎明)’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지난 5년간 작가의 고향 제주는 물론 서울 도심의 생생한 숨소리를 수묵화처럼 재현한 유화 30여 점을 내보인다. 언제 봐도 우리 땅의 흙 내음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진득하게 배어 있는 여명의 세계를 유화 물감으로 드라마틱하게 포착한 작품들이다.
전국 도심과 산야를 발로 걷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화폭에 새겨 가는 강 교수는 “동이 트기 전 새벽 분위기는 내 화업의 영원한 소재”라며 “유년기 몸과 마음의 세포에 각인된 이른 아침의 묘한 기운이 나를 끌어들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부대끼고 북적이는 현장보다 청량하고 신선한 세상(새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었어요. 폭포 속에 들어앉아 수련하는 명창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잊고 사는 꿈을 되찾아 주는 전시가 됐으면 해요.”
어느새 60대에 들어선 강 교수의 그림은 저마다의 개성 강한 방식으로 여명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기에 더욱 진솔하고 느낌 또한 강하다. 잔잔한 불빛이 깜빡이는 도심, 빛이 떨어져 아른거리는 건물, 돌담 밑에 우뚝 선 소나무 등 황홀한 새벽 풍경이 그의 화폭에서 ‘붓춤’을 추는 듯하다.
2002년 서울 도심에서 경기 김포로 작업실을 옮긴 강 교수는 “새벽의 생명력을 색채로 치환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며 “현대인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희망의 붓질로 되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으로부터 하늬바람이 불어오면 새벽이 크게 일렁입니다. 소망과 희망의 결정체 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제주의 다양한 질감에서 삶의 방식을 배웠고요.”
그의 유화그림은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 이야기만 즐기는 곳이 아니다. 자연을 온통 둘러싼 새벽 기운은 다가올 밝음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강 교수는 “앞으로 30년의 작업에서는 미학의 근본에 접근하고 싶다”고 했다. 판화에 무게가 실린 작품 방식의 강박 관념을 조금 덜어낸 것일까. 유화물감으로 새벽녘의 몽롱한 시간과 빛을 대비시켜 촉촉하게 색칠하는 게 즐겁고 흥분된단다. 여명의 빛줄기에 시간을 겹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들에 미묘한 역동성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파랑, 빨강, 노랑, 회색 등 다양한 색들이 화면 위를 서성이고, 빛줄기와 시간은 빠른 템포로 달아난다. 중첩된 투박한 물감과 섬세한 선묘, 감각적이면서 자유분방한 필치도 그의 그림에 빨려들게 하는 요소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1989년부터 한결같이 판화가를 고집해온 강 교수가 오는 6~20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첫 유화 작품전을 연다. ‘여명(黎明)’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지난 5년간 작가의 고향 제주는 물론 서울 도심의 생생한 숨소리를 수묵화처럼 재현한 유화 30여 점을 내보인다. 언제 봐도 우리 땅의 흙 내음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진득하게 배어 있는 여명의 세계를 유화 물감으로 드라마틱하게 포착한 작품들이다.
전국 도심과 산야를 발로 걷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화폭에 새겨 가는 강 교수는 “동이 트기 전 새벽 분위기는 내 화업의 영원한 소재”라며 “유년기 몸과 마음의 세포에 각인된 이른 아침의 묘한 기운이 나를 끌어들였다”고 했다. “사람들이 부대끼고 북적이는 현장보다 청량하고 신선한 세상(새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었어요. 폭포 속에 들어앉아 수련하는 명창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잊고 사는 꿈을 되찾아 주는 전시가 됐으면 해요.”
어느새 60대에 들어선 강 교수의 그림은 저마다의 개성 강한 방식으로 여명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기에 더욱 진솔하고 느낌 또한 강하다. 잔잔한 불빛이 깜빡이는 도심, 빛이 떨어져 아른거리는 건물, 돌담 밑에 우뚝 선 소나무 등 황홀한 새벽 풍경이 그의 화폭에서 ‘붓춤’을 추는 듯하다.
2002년 서울 도심에서 경기 김포로 작업실을 옮긴 강 교수는 “새벽의 생명력을 색채로 치환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며 “현대인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희망의 붓질로 되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강으로부터 하늬바람이 불어오면 새벽이 크게 일렁입니다. 소망과 희망의 결정체 같은 게 느껴지더군요. 제주의 다양한 질감에서 삶의 방식을 배웠고요.”
그의 유화그림은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 이야기만 즐기는 곳이 아니다. 자연을 온통 둘러싼 새벽 기운은 다가올 밝음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강 교수는 “앞으로 30년의 작업에서는 미학의 근본에 접근하고 싶다”고 했다. 판화에 무게가 실린 작품 방식의 강박 관념을 조금 덜어낸 것일까. 유화물감으로 새벽녘의 몽롱한 시간과 빛을 대비시켜 촉촉하게 색칠하는 게 즐겁고 흥분된단다. 여명의 빛줄기에 시간을 겹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들에 미묘한 역동성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파랑, 빨강, 노랑, 회색 등 다양한 색들이 화면 위를 서성이고, 빛줄기와 시간은 빠른 템포로 달아난다. 중첩된 투박한 물감과 섬세한 선묘, 감각적이면서 자유분방한 필치도 그의 그림에 빨려들게 하는 요소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