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마저 줄어 많은 지표가 이미 '마이너스'
산업 구조조정·노동개혁·생산성 제고 절실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 총장 >
마이너스 금리는 1972년 스위스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경기 침체와 더불어 각국에 널리 확산됐다. 지난 8월 말 글로벌 투자 등급 채권의 약 30%인 17조달러가 마이너스 수익률로 거래됐다. -0.7%라면 매년 투자자의 원금이 0.7%씩 줄어드는 셈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저축하면 원금이 줄어드니 저축 대신 소비를 늘리라는 정책이다. 일본 역시 저성장과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서 탈출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 확대와 더불어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을 했지만, ‘잃어버린 20년’의 침체를 쉽게 극복하지 못했다.
금리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로 결정된다.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프레임이 굳어지면 어느 나라도 마이너스 금리를 피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10개월 연속 0%대를 이어가며 지난 8, 9월 1965년 통계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제성장률도 이미 1분기에 -0.4%로 연 1%대를 벗어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내년에는 더 낮은 전망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도성장과 인플레이션에 익숙했던 한국 경제도 이전과는 정반대로 저성장과 저물가를 동반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침체’로 접근하고 있다. 물가뿐만이 아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소득이 증가할 수 없으므로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은 감소하고, 수출과 투자는 물론 제조업의 고용과 정규직 일자리도 크게 줄어들고 있으며, 인구마저 점감(漸減)한다고 한다. 많은 지표가 마이너스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금리가 0%에 근접하면 당연히 소비와 투자가 늘어 경기가 회복되고 물가가 상승해야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전통적인 정책 처방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 등에 일시적인 버블만 형성될 뿐 오히려 소비와 투자가 더 위축되고, 자금이 넘쳐 이자율은 0% 아래로 하락하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다.
왜 낮은 이자율에서도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지 않을까? 경기 전망이 어두운 데다, 기술 혁신에 따른 자본 회전율의 고도화와 인터넷 기반의 네트워크 효과 등으로 투자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반면 수명 연장으로 노후 대비 저축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플러스 이자율은 원래 내년에 받는 돈보다 당장 오늘 받는 편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 수명이 길어지면 그와는 반대 현상이 생겨 금리도 마이너스로 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은 “금리는 결국 인구 증가율과 같아지는 ‘생물학적 금리’로 수렴한다”고 했는데, 한국은 인구 증가율마저 마이너스로 가고 있지 않은가.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생물학적 금리가 마이너스 0.9%라고 계산하기도 했다. 게다가 성장률과 물가가 하락하는 분위기에서 누가 소비 지출을 늘리려 하겠는가.
한국 경제는 도처에서 마이너스 시대로 진입하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경제는 한 번 마이너스의 늪에 빠지면 쉽게 탈출할 수 없다. 따라서 유일한 대안은 사력을 다해 경제지표를 플러스로 돌려 늪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해답도 선진국들의 경험에 다 나와 있다. 재정 확대와 저금리 정책에만 몰입하지 말고, 산업 구조조정과 신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의 개혁 그리고 교육을 통한 인력의 전문성 확대가 모범답안이다. 경직된 제도를 타파하고 투자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문제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작 이런 전략은 없고, 막대한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만 지속하며 난간을 위험하게 걷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