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시장의 일은 시장에 맡겨라
“모든 프랑스 아이는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자 공포정치로 유명한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이같이 말하며 ‘반값 우유’ 정책을 시행했다. 솔깃한 구호에 대중은 환호했다. 우유값도 잠시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곧 농민들은 젖소 사육을 포기하고 도살하기 시작했다. 젖소 사료값보다 우유값이 낮으니 농민 입장에서는 젖소를 도살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우유 공급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폭등하자 로베스피에르는 ‘반값 건초’를 단행했다. 이번에는 건초업자들이 건초를 불태워버렸다. 건초 생산 비용이 건초 가격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의도와 반대로 반값 우유 정책은 가격 폭등만 불러왔고, 우유는 서민은 엄두도 못 내는 초고가 식품이 돼버렸다.

이는 경제학에서 정부 실패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200년도 더 지난 이 일화를 경제에 대한 무지가 만들어낸 웃지 못할 촌극으로 여기기엔 최근 우리의 현실이 이와 너무 닮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정부가 발표한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다. 정책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서민 집값을 잡아야 국민이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할 수 있고, 근로자의 생산 의욕을 고취할 수 있으며, 시중 자금도 보다 생산적인 투자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선 정반대의 결과가 허다하다. 현장 건설업자들도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 주택 공급이 줄고, 이미 완공된 아파트에 수요가 몰려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요즘 수도권 집값 흐름을 보면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행여 제2의 우유값 사례로 경제학 교과서에 실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논란이 뜨거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나 도서정가제는 정부가 오히려 가격 할인을 금지하는 제도다. 싸게 살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니 소비자 입장에선 납득이 잘 안 되는 제도지만 수년째 시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판매자가 이득을 본 것도 아니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도서 시장 자체가 축소돼 출판업계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호소하고 있다. 2014년 도서정가제가 강화된 뒤 소비자 잉여는 한 달에 최소 130억원, 오프라인 서점은 35억원이나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치 모든 참여자가 손해만 보는 ‘루즈 루즈(lose-lose)’ 게임 같다.

가격 통제 사례에서 보듯 인위적인 시장 규제는 시장 기능을 왜곡시킨다는 것이 경제학의 상식이다. 시장 규제가 실패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한국에만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를 통해 대기업의 발광다이오드(LED)산업 진출을 제한했더니 외국 기업의 점유율만 3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막걸리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기 전 5000억원대였던 시장이 현재 3000억원대로 줄어드는 등 시장 규모 자체가 축소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렇게 경제학적 상식에 반(反)하는데도 왜 이리 시장을 거스르는 정책이 많이 나오는 걸까. 혹자는 “시장 규제는 달콤한 독약과 같다”고 말한다. 정책 취지도 정의롭게 보이고, 당장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정책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을 인위적으로 재단한 정책치고 성공한 사례가 있었던가. 오히려 역효과만 내고,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선진국일수록 시장친화적 제도가 많은 이유다.

70여 년 전 중국의 마오쩌둥은 농촌을 시찰하다 곡식 낟알을 먹는 참새를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말했다. 이후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수많은 참새가 사라졌다. 그 후 곡식 수확은 늘었을까. 결과는 정반대였다. 참새라는 천적이 사라지자 늘어난 해충이 곡식을 더 많이 갉아먹어 엄청난 흉년이 들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참새가 쪼아먹은 낟알이 시장의 문제였다면 참새를 없애서 낳은 참상은 정부의 실패다.

지금 우리도 눈앞에 보이는 작은 문제점을 시정하려다 더 큰 손해를 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도가 좋다고 나쁜 정책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의 피눈물은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이되 정책은 차가운 머리로 만드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