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조만간 내놓을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에 대기업이 제3자를 매개로 간접적으로 총수 개인회사에 일감을 몰아줘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상위법(공정거래법)에 근거가 없는 ‘제3자 매개 거래’를 하위 지침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 위임입법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독] 공정위 재량권만 늘린 '일감 몰아주기' 지침
법 조항에 없는데 지침으로 규제

4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최근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 초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문제삼은 건 크게 △위임입법 및 법률유보 원칙(法律留保: 행정권 발동은 법률에 근거해야 함) 위배 △불분명한 기준 △판례와 반대되는 조항 등 모두 18가지다. 한경연은 이 중 위임입법 및 법률유보 원칙 위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법적 근거도 없이 행정부 내규로 기업을 처벌하겠다는 의미여서다.

대표적인 게 ‘총수 일가에 이익이 귀속될 경우 제3자를 매개로 한 간접거래도 이익 제공 행위에 포함한다’는 조항이다.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공시 대상 기업집단 소속사 △특수관계인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 이상 보유한 계열사로 한정하는데 하위 지침에 규제 대상(제3자)을 추가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용역거래는 업무 전문성 때문에 제3자를 경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모든 용역거래를 규제 대상으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우려했다.

정상가격 산정 방식도 법률유보 원칙을 어기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업 계열사가 총수 일가에 부당이익을 준 사실을 공정위가 입증하려면 특수관계가 없는 업체끼리 비슷한 거래를 했을 때의 가격(정상가격)을 근거로 내놔야 한다. 그래야 총수 일가가 ‘특별대우’를 받았는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거래를 찾아내 정상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꺼내든 게 국제조세조정법이다. 원가가산 방법(거래 원가에 통상의 이윤을 더한 가격) 등 이 법에 있는 손쉬운 정상가격 산정 방식을 빌리기 위해 공정거래법과는 도입 취지와 주체, 대상 등이 완전히 다른 법을 끌어쓰겠다는 얘기다.

판례를 무시한 조항도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9월 한진그룹 일감 몰아주기 판결을 내리면서 “내부거래 비중·금액이 작으면 공정거래 저해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지만, 공정위는 ‘총수 일가가 한 푼이라도 부당 이익을 얻었다면 공정거래 저해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조항을 슬쩍 끼워넣었다. 산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내부 규칙으로 국회에서 의결한 공정거래법과 법원 판례를 무력화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모호한 기준…공정위 재량만 키워

불명확한 기준도 문제다. ‘총수 일가가 맡을 때는 이익을 못 내는 영업권이라도 사후적으로 많은 이익을 낼 것이라는 합리적 예측이 가능할 때는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에 해당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그런 예다. ‘사후적’의 시점이 몇 년인지, ‘합리적 예측’은 누가 하는지, ‘상당한 이익’은 어느 정도인지 불분명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공정위 공무원이 그때 상황을 봐가며 마음대로 판단하겠다는 의미”라며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공정위의 재량권만 커지고 기업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게 된다”고 반발했다.

산업계는 일감 몰아주기 예외 대상도 원칙 없이 선정했다고 지적한다. 보안이 생명인 건 마찬가지인데도 신제품 외부운송(예외 인정)과 신제품 광고제작(예외 불인정)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초안을 토대로 기업 의견 등을 반영해 조만간 최종 지침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