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꼽히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4일 사실상 타결됐다. 다만 핵심 회원국인 인도의 불참으로 ‘반쪽 합의’에 그쳤다는 평가다.

한국 등 15개 아시아·태평양 국가는 내년 2월 협정문 서명 때까지 인도를 끌어들여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 경제블록 RCEP, 인도 빠진 '반쪽 타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아·태 15개국 정상은 이날 태국 방콕에서 열린 RCEP 정상회의에서 20개 항목의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다. 16개국 중 인도는 중국과의 만성적 무역적자를 이유로 추가 협상을 요구해 이번 협정에서 빠졌다.

당초 계획대로 인도가 참여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2%(27조4000억달러), 세계 교역의 29%(9조6000억달러)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 탄생한다. RCEP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 중국 호주 일본 인도 뉴질랜드 등 16개 국가가 2012년 협상을 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RCEP 정상회의 발언에서 “15개국 간 협정이 타결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36억명 거대시장 열리지만…RCEP 출범 '마지막 열쇠'는 인도
세계 GDP 30% 차지하는 '메가FTA' 반쪽 타결

7년간 난항을 겪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15개국 정상의 전격 합의로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 RCEP 국가 가운데 핵심 회원국인 인도가 중국과의 무역적자 해소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며 빠졌지만 15개국이 협상 개시 20개 항목의 협정문을 타결하는 성과를 냈다.

◆15개국 우선 협상 타결 ‘예상외 성과’

정부는 당초 이번 아세안+3 정상회의 기간 중 실질적 협상 타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전날 자정까지 각국 장관들이 긴급 회의를 거듭한 끝에 15개국 간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번에 타결된 협정문은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원산지 표시 15개국 통일 등 교역을 원활하게 하는 분야와 서비스투자 개방 등 기술적 부분이 망라됐다. 상품 분야 개방도 일부 협상만 남겨두고 있다.

RCEP에 참여하는 16개국의 국내총생산은 27조4000억달러로 세계의 32%, 인구는 총 36억 명에 달한다. 최빈개도국부터 선진국까지 다양한 경제발전 수준에 있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고 특히 성장잠재력이 풍부한 국가가 다수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RCEP은 우리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망 시장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진출 기회를 제공하는 교두보가 될 전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RCEP을 통해 특히 한국과 일본은 각각 처음으로 양국 간 본격적인 자유무역 협정을 맺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한·일 간 FTA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RCEP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 불참으로 ‘반쪽’ 타결에 그쳐

RCEP의 성공적인 출범을 위한 열쇠는 인도가 쥐고 있다. 외신들도 15개국의 우선 협상 타결보다는 인도의 불참으로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내년 2월 협정문 서명까지 약 4개월 동안 인도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인도가 RCEP 참여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협상에 따른 보완장치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번 15개국 협정문이 최종 타결을 위한 마지막 종착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도는 그동안 중국과의 만성적인 무역적자 해소 방안을 요구하며 RCEP 조기 타결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RCEP 협상 당사국 대부분이 2015년부터 매년 연내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가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인도 입장에선 RCEP 타결에 따른 중국산 공산품과 농산물 공세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라집 비스와스 IHS마킷 아시아·태평양 부문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인도는 중국에 대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며 “인도 정부는 RCEP을 체결하면 값싼 중국산 제품이 밀려들어와 제조업이 대폭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내 농업 분야에서도 RCEP 반대 목소리가 높다. 인도는 농민 인구가 2억6300만 명으로, 생산인구 중 농업 분야 비중이 가장 크다. 인도 농민들은 농산물과 유제품 시장에서 호주나 뉴질랜드 등과 경쟁해 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가 RCEP에서 아예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라디카 라오 싱가포르 DBS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인도가 RCEP 역내 무역장벽을 낮출 경우 당장은 수출에서 타격을 받겠지만 서비스와 투자 시장을 개방하면서 얻는 이익도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공급망 참여율을 높이고 외국 시장 접근성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방콕=김형호/선한결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