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유리 융합한 조각 국내 첫 실험…"현대인의 이중성을 형상화했어요"
조각가 신재환 씨(46·사진)는 태어날 때 입은 신경 손상으로 청각과 언어 장애를 겪으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가슴에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뼈저린 한이 도사리고 있다. 그동안 겪은 서러움과 몰이해에 사회 전체가 얄밉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장애는 단순히 극복해야 할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과 인정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일 시계를 잊고 바람소리와 새 지저귐을 좇아 하루를 보내며 마음속에 갈망하는 것 그대로를 돌에 새겼다. 그는 상명대 조소과와 서울시립대 대학원을 거쳐 촉망받는 조각가가 됐다. 한국 석조각의 대가 전뢰진의 예술혼과 열정을 따라하며 20년 넘게 구상조각에 매진하다 2017년부터 대리석과 유리를 융합한 추상조각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지난 4일 시작해 오는 16일까지 펼쳐지는 신씨의 개인전은 국내 미술계 처음으로 대리석과 유리를 접목한 고난도의 신작 연구보고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전통적 재료인 돌에 현대적 감각의 유리를 결합해 새로운 추상 조각을 구현한 근작 30여 점을 내보였다. 전시회 제목은 ‘그곳을 향하여(Toward that the place)’로 정했다. 스승 전뢰진의 흔적을 벗고, 새로운 작품 변화와 함께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를 보여준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야무지게 현대인의 삶의 흔적을 새긴 작품들이 경쾌하면서도 생경하다.

5일 전시장에서 만난 신씨는 “돌과 유리를 친구 삼아 일상의 조그만 행복을 담금질하며 동심의 세계로 깊이 빠져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유리와 돌을 조립·가공해 추상적 미감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무엇보다 두 재료의 물성을 작업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출품작들은 재료의 대비는 물론 밝은색과 어두운색, 투명함과 불투명함 등 상반된 조합으로 현대인의 이중성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했다. 기하학적 구조와 패턴에 바탕을 두면서 고도의 형식미를 탐구해온 신고전주의적 미감과 통하는 듯하다.

작가는 “돌과 유리는 서로 생명이 없는 듯한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지만 두 가지 물질의 본성과 작용을 조형적 형태로 구축해 통일성과 조화, 생명력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업 과정도 매우 까다롭다. 먼저 두꺼운 유리판을 에폭시에 접착한 뒤 덩어리를 만들어 딱딱한 대리석과 붙인다. 덩어리를 다시 기계로 잘라 형태가 이뤄지면 수만 번 그라인더로 연마해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는 “돌과 유리에 표출된 물성을 새기는 작업”이라며 “내 작품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고 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고 말했다. “시인 이태백이 산수 환경과 공간 환경을 시(詩)로 읊었다면 나는 인간의 행복을 3차원 의미의 세계로 변화시켜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인위적인 조형작품으로 창작한다”는 그의 말이 도탑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