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위비 협상, 외교부 장관 '구원 등판'해야
지난여름부터 제11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 Special Measures Agreement) 체결을 위한 실무협상이 진행 중이다. 미국은 ‘글로벌 리뷰’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모든 주둔국에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연 50억달러(약 6조원)가량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가능한 한 빨리 병력을 빼내고 싶다. 큰 비용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주한미군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워싱턴DC와 서울의 조야에서 이번 협상이 주한미군 감축과 철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초 스톡홀름 미·북 실무회담에서도 북측 대표가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우리는 달라진 미국의 ‘거래적’ 접근 방식과 마주하는 험로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이 협상의 목적은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 필요한 분담금의 적정 규모와 적용 기간에 합의하는 데 있다. 그 첫걸음은 한·미 동맹의 가치와 비용의 관계를 트럼프 대통령이 올바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실무협상도 지난 제10차 협상처럼 공전을 거듭할 공산이 크다. 필요하다면 올해 분담금을 1년 연장 적용하면서 충분한 협상 기간을 갖는 유연성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인식에 동의한다면 이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나서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미국의 지나친 분담금 증액 요구를 교정하도록 담판을 지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조한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 원칙에 따라 미국 측 청구서의 소요 내역을 확인하고 총액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설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연 50억달러 요구는 아마도 군속 등 인적 비용이 포함된 주한미군 실제 주둔비용과 부가가치(주한미군의 안보적 가치) 그리고 괌 등 역외 주둔비용 일부를 합산한 결과로 보인다. 미국 국방부의 ‘2019회계연도 예산 운영유지비 총람’에 주한미군 운영비용이 약 44억달러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의지가 작용한 결과다. 그는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목표를 높게 잡은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라고 술회했다.

이번 미국의 요구는 ‘인건비를 뺀 주한미군 주둔비용’에서 한국의 분담 비중을 정하는 종전의 협상 틀을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기존 인건비·군사 건설비·군수 지원비의 범주를 미국 측의 전략자산 전개·연합 연습, 한국 측의 미국 무기 구매·반환기지 환경치유·간접지원비 등을 반영해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일본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18년 기준 특별협정(SMA) 명목으로 약 2조590억원을 부담했다. 여기에 ‘배려’ 예산을 합쳐 전체 7조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주일미군에 제공한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최소 5년의 적용 기간에 합의하고 매년 단계적으로 증액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미국의 ‘역외전략’ 기조는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채택됐고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주둔국의 자강 역량과 미국의 해외주둔 역량을 합쳐 ‘협력적’ 안보 태세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한편 대부분의 분담금 사용에 현물지원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 경제 이익으로 환원되는 효과와 함께 미국 측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 등을 국민과 국회에도 적극 알려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필수적 안보기제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 억제는 물론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진정한 의미가 그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군 지휘부와 함께한 자리에서 ‘위대한 동맹, 영원한 동맹’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계기로 외교 역량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