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월가에 퍼지는 'Risk-On'(위험자산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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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온’(Risk-On. 위험자산 선호)이 확산되고 있다.”
월가 한 펀드매니저의 말입니다.
투자심리에 불을 본격적으로 지핀 건 4일 오후(미 동부시간)에 나온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였습니다. 미 정부가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할 경우 12월15일로 예정된 관세 부과를 철회할 뿐 아니라 지난 9월1일 매기기 시작한 1120억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5% 관세를 철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앞두고 관세 철폐를 요구하는 가운데, 미국이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관세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된 관세를 보류한 적은 있지만, 기존에 부과된 대중 관세를 철회한 적은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도 두번이나 정상회담을 하면서 유엔 제재는 하나도 되돌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중국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철회될 경우 정말 ‘무역전쟁의 턴어라운드’가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위험자산 선호는 금융시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일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뉴욕 증시뿐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무역전쟁 속에 강세를 보여온 채권 가격과 금값이 약세로 돌아섰고, 중국 위안화가 석달여만에 7위안 이하로 떨어지는 등 그동안의 가격 흐름이 되돌려지고 있습니다.
미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은 이날 6.9bp(1bp=0.01%포인트) 올라 1.857%까지 뛰었습니다. 이달 초 1.50%를 깨고 내려갈 뻔 했던 금리가 다시 치솟은 겁니다. 독일 일본 등 마이너스 금리가 심화되던 국채들도 최근 금리가 제로 근처까지 오르고 있습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12월물 금 가격은 27.40달러(1.8%) 하락한 1,483.70달러에 마감했습니다. 지난 8월초 부터 꾸준히 유지해온 1500달러대가 무너진 겁니다. 금 값을 따라가던 은 가격은 이날 2.77%나 떨어졌습니다.
중국 위안화는 3개월만에 이른바 ‘포치’를 탈피했습니다. 달러당 환율이 6.98위안을 기록해 8월 이후 처음으로 7위안 선 아래로 떨어진 겁니다.
칼라일의 설립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를 완료할 것으로 믿는다. 1단계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건 내년이나 한 두해 정도는 더 경제에 (무역전쟁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금융시장에는 현재 엄청난 현금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머니마켓펀드 시장에 최근 10년래 가장 많은 3조4000억달러나 쌓여있습니다. 투자자들이 지속된 무역전쟁 불확실성,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그동안 베팅을 미루고 놔둔 돈입니다.
만약 위험자산 선호가 확산돼 이 돈이 증시로 몰리기 시작한다면 ‘멜트업(melt-up·단기 과열국면)’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리스크 온이 나타나자, 월스트리트 금융사들도 급히 전망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강세장이 끝날 것”이라고 주장해온 모건스탠리에선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모건스탠리자산운용의 유명 펀드매니저인 앤드류 슬리먼은 이날 CNBC방송에서 “연말까지 S&P500 지수가 5% 더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22%가 넘게 오른 S&P500 지수가 3225까지 오른 다는 얘기입니다.
슬리먼은 “투자자들은 올 상반기 침체를 우려해 매우 방어적인 포지션을 취했다”며 “다시 시장으로 돈이 들어오면 그동안 소외됐던 주식들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어제 S&P500 지수의 연말 전망을 급히 바꿨습니다. BofA는 지난달 초 연말 지수를 2900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사 공정가격모델에 따르면 2688로 끝날 가능성이 40%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4일 투자자 메모에서 2900으로 본 예상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으며, 연말까지 대대대 ‘멜트업’이 나타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JP모간은 지난주 10월 미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12월에도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제롬 파월 의장이 “현재 통화정책이 적정하다”고 몇차례나 강조했지만, JP모간은 “경기 둔화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며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 12만7000명에 달한 10월 신규고용 수치를 본 뒤 12월 기준금리 동결로 전망을 수정했습니다.
아직도 훈훈한 연말 장을 방해할 난관은 많습니다.
아직도 미·중 양국이 과연 이달 말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할 수 있을 지 아무도 모릅니다.
게다가 오는 13일이면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차에 대한 관세 25%를 부과할 지 결정하게됩니다. 지난 5월 180일 미룬 결정의 시한이 다가온 겁니다.
월가에선 미·중 무역합의로 기대가 커진 상황에서 다시 증시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유럽과의 무역관계를 바로잡는 것(EU 농업시장 개방)은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잦아들면 유럽을 공격할 것이란 관측도 상당합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