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흔들리는 '손정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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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버블이 막 끝나던 2000년에 마윈을 만났다. 그 전 해에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은 온전한 사업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매출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눈이 매우 강력했고 빛이 났다.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어 보였다. 그의 열정을 믿고 단 6분 만에 2000만달러(약 23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처럼 ‘느낌’이 오면 눈빛만 보고도 과감히 투자하는 사업가다. 당시 ‘6분 만의 결정’은 2014년 알리바바 상장 때 수천 배의 결실로 돌아왔다. 그는 2017년 1000억달러(약 116조원) 규모의 비전펀드 1호를 조성해 지난해까지 8900여 건의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야심차게 투자한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주가가 6개월 사이에 지난 5월 상장 때 공모가(45달러)보다 30%가량 하락했다. 사무용 메신저업체인 슬랙의 주가도 공모가 대비 30% 넘게 빠졌다. 인도 호텔체인 오요(Oyo)의 일본 진출 사업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에는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의 상장 실패로 치명타를 맞았다.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당초 예상했던 470억달러에 턱없이 못 미치는 150억달러 이하로 드러났다. 직원 1만3000명 중 4000명을 감축하고 95억달러(약 11조원)를 긴급 투입해야 할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위워크가 시간당 22만달러(약 2억6000만원)씩 현금을 까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잇단 투자 손실로 소프트뱅크 주가마저 최근 두 달 새 30% 이상 떨어지자 그의 입에서 “열정” 대신 “흑자”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이사회 의석 중 1석 이상을 갖고 방만경영을 견제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창업주의 개인 치부에 이용될 수 있는 차등의결권 행사도 금지하기로 했다.
이는 ‘직감에 따른 파격 투자’ ‘기술기업 선(先)투자’라는 그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외부 투자금으로 사업을 키워 온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들의 성장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일동포 3세로 무일푼에서 일본 1~2위 부자까지 오른 그에게도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는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스타트업 주역들의 고민 또한 ‘손정의 제국’의 그늘만큼 깊어지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처럼 ‘느낌’이 오면 눈빛만 보고도 과감히 투자하는 사업가다. 당시 ‘6분 만의 결정’은 2014년 알리바바 상장 때 수천 배의 결실로 돌아왔다. 그는 2017년 1000억달러(약 116조원) 규모의 비전펀드 1호를 조성해 지난해까지 8900여 건의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올 들어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야심차게 투자한 차량 공유업체 우버의 주가가 6개월 사이에 지난 5월 상장 때 공모가(45달러)보다 30%가량 하락했다. 사무용 메신저업체인 슬랙의 주가도 공모가 대비 30% 넘게 빠졌다. 인도 호텔체인 오요(Oyo)의 일본 진출 사업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에는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의 상장 실패로 치명타를 맞았다.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당초 예상했던 470억달러에 턱없이 못 미치는 150억달러 이하로 드러났다. 직원 1만3000명 중 4000명을 감축하고 95억달러(약 11조원)를 긴급 투입해야 할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위워크가 시간당 22만달러(약 2억6000만원)씩 현금을 까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잇단 투자 손실로 소프트뱅크 주가마저 최근 두 달 새 30% 이상 떨어지자 그의 입에서 “열정” 대신 “흑자”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이사회 의석 중 1석 이상을 갖고 방만경영을 견제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창업주의 개인 치부에 이용될 수 있는 차등의결권 행사도 금지하기로 했다.
이는 ‘직감에 따른 파격 투자’ ‘기술기업 선(先)투자’라는 그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외부 투자금으로 사업을 키워 온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들의 성장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일동포 3세로 무일푼에서 일본 1~2위 부자까지 오른 그에게도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는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스타트업 주역들의 고민 또한 ‘손정의 제국’의 그늘만큼 깊어지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