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마찰 틈새서 '미국 비위 더칠라' 일단 보류

세계 최대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반도체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차세대 장비를 중국에 납품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중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5G 전략에 차질은 물론 첨단 반도체 자체생산을 추진중인 중국의 국가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ASML은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업체인 국영 SMIC에 올해말까지 납품키로 했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납품을 보류키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 7일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ASML은 중국에 최첨단 장비를 공급해 미국을 자극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납품을 일단 보류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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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V노광장비는 ASML이 독자 개발해 독점 생산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반도체의 성능 향상은 회로 선폭을 얼마나 미세하게 하느냐가 열쇠다.

미세할수록 연산처리 능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세화가 진전될수록 난이도도 높아진다.

이런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개발된 EUV노광장비는 대당 150억 엔(약 1천598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업계의 큰 손인 삼성전자와 대만 TSMC도 올부터 첨단제품 양산에 이 장비를 막 도입했다.

내년에 발매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애플의 신형 스마트폰에도 이 기술을 활용한 CPU(중앙연산처리장지)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올부터 회로선폭 14나노(나노는 10억분의 1m) 제품의 시험양산을 시작한 단계다.

EUV 기술이 필요한 단계는 7나노 이하 제품까지 기술이 진전된 이후 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더라도 당장 실적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자금을 등에 업고 대만 TSMC 등을 추격하려던 계획에는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앞으로 5G서비스가 본격화되면 스마트폰 등의 데이터처리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반도체 성능향상의 중요성은 더 커지는데 첨단기술 도입은 지연되는 셈이다.

ASML의 대 중국 납품보류는 첨단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마찰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비위를 더치지 않으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반도체 장비 부품의 약 20%를 미국 코네티컷주에 있는 자사공장에서 생산한다.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미국 반도체 기업도 주요 고객이다.

작년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6%에 달해 미국으로부터 규제를 받게 되면 타격이 크다.

미중 마찰은 회복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반도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제반도체제조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장비 시장은 내년에 올해보다 7% 증가한 558억 달러로 2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대만 등의 정체를 메꾸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중국은 ASML에도 성장기반이다.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로 한국의 35%에 이어 2위 시장이다.

EUV노광장비 납품계획이 철회된 것은 아니다.

ASML은 미중간 긴장완화 상황을 보아가면서 납품 재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이끄는 중국 지도부는 작년 15%에 머문 반도체 자급률을 내년에 40%, 2025년에는 70%로 높인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의 첨단장비 도입이 늦어지면 5G용 제품뿐만 아니라 반도체 강화계획 자체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