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갈수록 교묘해지는 정보 조작…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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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의 시대
케일린 오코너·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 / 박경선 옮김
반니 / 344쪽 / 1만6000원
케일린 오코너·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 / 박경선 옮김
반니 / 344쪽 / 1만6000원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타임스 같은 주류 매체가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고 핏대를 올린다. 반면 주류 매체들은 트럼프가 가짜 뉴스의 근원이라고 맞선다. 미국만의 일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가짜 뉴스라는 말을 하루라도 듣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갈수록 가짜 뉴스의 생산과 유통이 교묘해져서 무엇이 허위로 조작된 정보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이자 진화게임이론가인 케일린 오코너와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제임스 오언 웨더럴이 거짓 정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며 이 과정에 거짓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교묘하게 파고드는지 그 작동 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 UC어바인 교수인 이들은 이 책 <가짜 뉴스의 시대>에서 거짓 정보가 우리의 신념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과학적 근거에 바탕해 풀어낸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는 다양하다. 의학과 과학의 연구 결과를 왜곡하는 가짜 뉴스부터 기후변화를 둘러싼 이슈, 정치·군사·무역·이민·경제 정책에 관한 가짜 뉴스까지 폭넓다. 그 배후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민의를 왜곡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에 구멍을 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듀폰을 비롯한 화학업계가 반기를 들었고,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규제에 대해서는 담배업계가 사활을 걸고 장벽을 쳤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거짓 신념을 확산시키는 사회적 요인이다. 이를 위해 수학적 모형을 활용,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신념을 형성하고 수정하는지 다양한 패턴 읽기를 시도한다.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과학계 참여자들조차 증거를 채택하고 신념을 형성, 수정하는 데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나 증거를 학술지 등을 통해 공유하는 데 익숙하다. 문제는 이 같은 공유가 때론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것. 호주의 의학자 로빈 워런과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라는 박테리아가 위궤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 2005년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는 박테리아가 아니라 위산이 궤양을 유발한다고 믿었고 이들의 연구 성과를 주목하지 않았다. 화가 난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배양 접시를 통째로 마셔버렸다. 곧바로 위에 궤양이 생겼고, 항생제로 이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양극화(polarization)는 물리학 용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전자기파가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전파되는 걸 편광이라고 한다. 19세기 중반 정치학계에서 두 당파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의견이 모이지 않는 현상을 편광으로 설명하면서 양극화란 용어가 생겼다고 한다.
양극화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논쟁이 진전될수록 사람들이 합의에 근접하기보다는 양측으로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느 시점부터는 듣기를 중단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내놓은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마침내 집단은 둘로 갈라지고 아무리 많은 증거를 제시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현재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만 찾고 관심을 기울이는 확증편향,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의 판단을 좇아가는 동조편향이 이를 부추긴다.
2017년 1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청중의 규모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사상 최대 규모의 청중이 모였다는 백악관 발표가 논란을 낳았다. 두 학자가 1만4000명에게 트럼프와 오바마의 취임식에 참석한 군중 사진을 보여주고 어느 쪽에 사람이 더 많은지 물었다. 놀랍게도 트럼프 지지자의 15%는 한눈에 보기에도 확연히 적은 트럼프 쪽 사진을 선택했다. 눈앞의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고 백악관 발표에 동조한 것이었다.
선전의 전문가들이 개입해 정보와 대중의 신념을 조작하는 실태도 고발한다. 담배가 폐암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미국 담배업계는 여론 조작에 앞장섰다. 담배를 여성 해방의 상징인 ‘자유의 횃불’로 브랜드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흡연 외에 탄광 먼지나 도시 분진 등 폐암의 유발 요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략도 등장했다. 담배회사들은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해 증거를 취사선택하는 편향적 산출전략, 불리한 연구 결과는 발표하지 않거나 비주류 저널에만 싣는 출간편향, 선택적 공유 등의 다양한 기법을 동원했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는 특히 가짜 뉴스가 판을 쳤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제적인 아동매춘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가짜 뉴스가 트위터를 통해 확산됐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가짜 뉴스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대적으로 확산시켰다는 증거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책은 ‘사상의 시장’이 거짓 정보를 효과적으로 골라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오염된 진실’이 민주주의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확대되는 정보 조작에 맞서기가 쉽지는 않지만 경각심과 함께 그 메커니즘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사회적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이자 진화게임이론가인 케일린 오코너와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제임스 오언 웨더럴이 거짓 정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며 이 과정에 거짓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교묘하게 파고드는지 그 작동 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 UC어바인 교수인 이들은 이 책 <가짜 뉴스의 시대>에서 거짓 정보가 우리의 신념을 어떻게 조작하는지를 과학적 근거에 바탕해 풀어낸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는 다양하다. 의학과 과학의 연구 결과를 왜곡하는 가짜 뉴스부터 기후변화를 둘러싼 이슈, 정치·군사·무역·이민·경제 정책에 관한 가짜 뉴스까지 폭넓다. 그 배후에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민의를 왜곡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에 구멍을 내고 있다는 연구 결과에 대해 듀폰을 비롯한 화학업계가 반기를 들었고,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규제에 대해서는 담배업계가 사활을 걸고 장벽을 쳤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거짓 신념을 확산시키는 사회적 요인이다. 이를 위해 수학적 모형을 활용,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신념을 형성하고 수정하는지 다양한 패턴 읽기를 시도한다.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과학계 참여자들조차 증거를 채택하고 신념을 형성, 수정하는 데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나 증거를 학술지 등을 통해 공유하는 데 익숙하다. 문제는 이 같은 공유가 때론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것. 호주의 의학자 로빈 워런과 배리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라는 박테리아가 위궤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혀 2005년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는 박테리아가 아니라 위산이 궤양을 유발한다고 믿었고 이들의 연구 성과를 주목하지 않았다. 화가 난 마셜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배양 접시를 통째로 마셔버렸다. 곧바로 위에 궤양이 생겼고, 항생제로 이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양극화(polarization)는 물리학 용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전자기파가 반대되는 두 방향으로 전파되는 걸 편광이라고 한다. 19세기 중반 정치학계에서 두 당파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의견이 모이지 않는 현상을 편광으로 설명하면서 양극화란 용어가 생겼다고 한다.
양극화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논쟁이 진전될수록 사람들이 합의에 근접하기보다는 양측으로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느 시점부터는 듣기를 중단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내놓은 증거는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마침내 집단은 둘로 갈라지고 아무리 많은 증거를 제시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현재 신념과 일치하는 증거만 찾고 관심을 기울이는 확증편향,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의 판단을 좇아가는 동조편향이 이를 부추긴다.
2017년 1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청중의 규모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사상 최대 규모의 청중이 모였다는 백악관 발표가 논란을 낳았다. 두 학자가 1만4000명에게 트럼프와 오바마의 취임식에 참석한 군중 사진을 보여주고 어느 쪽에 사람이 더 많은지 물었다. 놀랍게도 트럼프 지지자의 15%는 한눈에 보기에도 확연히 적은 트럼프 쪽 사진을 선택했다. 눈앞의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고 백악관 발표에 동조한 것이었다.
선전의 전문가들이 개입해 정보와 대중의 신념을 조작하는 실태도 고발한다. 담배가 폐암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미국 담배업계는 여론 조작에 앞장섰다. 담배를 여성 해방의 상징인 ‘자유의 횃불’로 브랜드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흡연 외에 탄광 먼지나 도시 분진 등 폐암의 유발 요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전략도 등장했다. 담배회사들은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해 증거를 취사선택하는 편향적 산출전략, 불리한 연구 결과는 발표하지 않거나 비주류 저널에만 싣는 출간편향, 선택적 공유 등의 다양한 기법을 동원했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는 특히 가짜 뉴스가 판을 쳤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제적인 아동매춘 조직의 우두머리라는 가짜 뉴스가 트위터를 통해 확산됐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가짜 뉴스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대적으로 확산시켰다는 증거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책은 ‘사상의 시장’이 거짓 정보를 효과적으로 골라낼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오염된 진실’이 민주주의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갈수록 교묘해지고 확대되는 정보 조작에 맞서기가 쉽지는 않지만 경각심과 함께 그 메커니즘을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