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나 작가의 ‘Where is Bushman’.
함미나 작가의 ‘Where is Bushman’.
올 상반기 서울옥션과 K옥션 등 8개 업체가 실시한 미술품 경매(온라인 포함)에서는 출품작 1만2458점 중 8199점이 팔려 낙찰 총액 826억원(낙찰률 65.8%)을 기록했다. 김환기 작품의 낙찰액은 145억원으로, 전체 낙찰 총액의 13%를 점유했다. 낙찰가 상위 작가 10명의 낙찰액(396억원)은 전체 경매 유입 자금의 48%를 차지했다. 상위 20명 낙찰액(465억원) 점유율은 56%에 달했다. 국내에는 약 10만 명의 전업 작가가 활동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 작가 작품만이 경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간 2000억원대 국내 미술 경매시장이 ‘0.1% 작가만의 리그’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옥션이 이런 경매 형태의 단점을 보완해 보다 많은 화가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다. 지난 7일 선보인 온라인 경매 ‘제로 베이스’다. 작가들은 기존 경매 기록이 없더라도 다양한 전시 이력과 작품성만 갖추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다. 시장 가격이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출품작 경매는 모두 ‘0원’에서 시작한다. 최종 경매 가격은 전적으로 구매자들의 응찰 경쟁을 통해 결정된다. 경합 여부에 따라 경매 낙찰가는 예상가의 10배, 100배, 그 이상의 가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

손지성 서울옥션 홍보팀장은 “제로(0)라는 숫자는 새로운 시작점이자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하는 경매 방식으로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며 “그동안 그림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재판매 형태로 형성된 경매시스템에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제로 베이스의 첫 작품 경매는 10일 시작해 오는 15일 마감된다. 서울옥션이 선정한 유망 작가 김완진을 비롯해 김상현, 함미나, 장은우, 정다운, 이언정 등 여섯 명의 작품 50여 점을 경매한다.

출품작 대부분은 현대인의 일상과 생각을 그림으로 승화했다. 인체를 소재로 작업한 김완진 작품은 현대인의 결핍과 갈망을 누드로 표현했다. 작품마다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구원을 갈망하는 손짓과 몸짓에서 결핍을 덮으려는 힘의 응축이 느껴진다. 비닐봉지를 소재로 삼은 김상현의 작품은 일상의 가치 판단에 의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슈퍼마켓 봉지를 액자화한 작품은 감사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사물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유년 시절 기억 속 풍경과 인물의 흔적을 화폭에 담아낸 함미나, 건물과 낯선 골목을 소재로 작업한 장은우, 천을 활용해 자유로운 조형성을 추구한 정다운, 도시의 이미지와 사람들의 일상을 판화 형태로 묘사한 이언정 작품들도 미적 여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매 기간에 서울옥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24시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마감일인 15일 오후 2시부터 순차적으로 마감된다. 출품작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볼 수 있다. 서울옥션은 앞으로 평면 회화뿐 아니라 사진, 조각, 설치, 공예 등 여러 장르 작품과 다양한 작가를 선정해 제로 베이스 경매를 이어갈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