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런던은 어떻게 글로벌 '금융허브'가 됐나
영국 수도 런던에는 ‘시티오브런던’이라는 행정구역이 존재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런던시다. 우리가 흔히 런던이라고 부르는 도시의 정식 명칭은 32개 자치구와 시티오브런던을 포함한 ‘그레이터런던(Greater London)’이다.

줄여서 ‘시티’라고 부르는 시티오브런던의 별칭은 ‘스퀘어마일’. 지하철 뱅크역을 중심으로 1제곱마일(약 2.59㎢)에 불과한 좁은 구역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면적(2.9㎢)보다 작다. 그럼에도 시티는 런던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영국은행, 런던증권거래소, 런던금속거래소 및 세계 5000여 개의 금융회사가 밀집한 금융특구이기 때문이다.

런던은 세계 주요 도시 중 금융집적도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꼽힌다. 세계 외환, 주식, 파생상품, 선물 거래의 상당수가 여의도 면적보다 좁은 시티 안에서 이뤄진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회사가 이곳에 본거지를 뒀다. 런던에 진출한 국내 금융사 30여 곳도 모두 시티에 사무실을 차렸다.

금융권 종사자들은 런던이 세계 최고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한 이유 중 하나로 시티에 집적된 금융인프라를 꼽는다. 런던을 찾는 금융사 관계자들은 통상 시티 안에서만 일정을 소화한다. 만나야 하는 금융사가 시티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시티는 도보로 10분이면 왕래가 가능하다. 한 빌딩에서 층을 바꿔가며 투자설명회(IR)를 하는 모습도 흔하다.

최근 런던을 찾은 국내 한 금융지주 회장은 하루에만 다섯 곳의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IR을 열었다. 그는 “대부분 도시에선 하루에 두 번 이상 IR을 하기 어렵다”며 “시티에 올 때마다 금융허브의 집적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큰돈’이 오가기 위해선 얼굴을 맞대야 한다는 건 금융의 기본이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 글로벌 금융도시 순위를 발표하는 국제컨설팅그룹 지옌은 한데 집적화된 금융인프라를 금융허브의 핵심 조건으로 평가한다. 런던뿐 아니라 세계 주요 금융허브 도시인 뉴욕(맨해튼), 홍콩(센트럴), 싱가포르(래플스플레이스)의 공통점도 좁은 특정 지역에 금융인프라가 밀집돼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단지 두 곳으로 금융중심지(금융허브)가 분산돼 있다. 집적도만 놓고 보면 허브라는 표현이 무색하다. 서울에서도 금융기능은 여의도뿐 아니라 강남과 광화문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중심지 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서울에만 집중해도 어려운 판국에 쪼개져 있으니 정부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전북 전주를 제3의 금융중심지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온다.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되레 더 분산하자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추진전략 수립 당시 한국을 홍콩과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목표 달성 시기는 2020년. 지난 9월 지옌이 발표한 금융도시 순위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는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서울은 36위, 부산은 43위였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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