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1학년도부터 인공지능(AI)과 지능형 로봇,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첨단 분야 대학 정원을 8000명 늘려 10년간 8만 명의 전문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도권 정원 규제는 그대로 두고,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정원을 확보하는 것이어서 ‘눈 가리고 아웅’식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는 손도 안대고…첨단학과 10년간 8만명 늘린다는 정부
정부는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사람투자·인재양성 협의회 겸 제15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첨단 분야 인재 양성 계획을 밝혔다. 교육부는 첨단 분야 학과 정원을 늘리기 위해 융합학과 신설 기준을 완화하고, 신입생 선발 없이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융합학과 운영을 허용하기로 했다. 결손인원(제적·퇴학 인원)을 활용해 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대학설립운영규정도 손보기로 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날 발표에서도 대학별 전체 정원을 늘리는 정책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김규태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은 “대학의 총인원 범위 내에서 학과별 정원 조정을 조금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라며 “대학 정원이 순증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총정원을 늘린다 하더라도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엄정한 심사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새롭게 내놓은 대책도 새 학과를 설립하면 다른 학과에서 그만큼 인원을 줄이는 기존의 ‘제로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의 한 국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융합학과를 신설하는 것도 결국 학과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며 “쉽게 말해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해 AI학과를 만든다는 것인데 해당 학과 교수들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결손인원이 매년 일정하게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활용해 학과를 신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해묵은 규제에 막혀 주춤거리는 사이 미국과 중국, 일본은 AI 인재 양성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4월 5년 안에 AI 관련 교수 500명과 5000명의 학생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일본은 이공계와 보건계열에서 18만 명, 인문계에서 7만 명을 합쳐 매년 25만 명을 AI 관련 인재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과정에는 프로그래밍 교육을 의무화하고 대학에서는 문·이과를 불문하고 AI 교육을 할 계획이다. 미국은 AI 인력 양성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운영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