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이 긴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탄을 발사해 시위를 벌이던 시민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다시 격렬해지고 있다. 홍콩 경찰이 ‘실탄 진압’에 나선 것은 중국 공산당의 기류가 바뀌고 나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지난달 말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강경 대응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후 홍콩 경찰이 강경 진압으로 돌아서 10여 일 만에 홍콩 시위 관련 사망·부상자가 잇따르고 있다. 홍콩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홍콩증시와 주요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다.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20분께 홍콩 사이완호 지역 시위에서 홍콩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두 명의 시민에게 실탄 세 발을 발사했다. 경찰이 실탄을 쏘는 장면은 시위대의 페이스북 중계방송에 포착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실탄에 맞은 시위자 두 명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이 중 한 명은 위독하다”고 전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시위자는 21세 남성으로, 오른쪽 신장과 간 부근에 총알이 박혔다. 다른 한 명은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지시 후 홍콩 경찰 실탄 발사…美·中 무역협상에 '대형 악재'
홍콩 시민들은 이번 시위자 피격이 실탄까지 발사할 긴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지난달 1일과 4일 시위에서도 시위자가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았으나 다수의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했던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사건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는데 시위자의 팔이나 다리가 아니라 가슴을 향해 정면에서 실탄을 쐈다는 것이다.

홍콩 경찰의 시위 진압 양상은 이달 초부터 확 바뀌었다. 중국 공산당이 지난달 31일 끝난 4중전회에서 홍콩에 대한 직접 통제 및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일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을 만나 “폭력 활동 진압에 흔들리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홍콩 경찰의 무력 진압 강도가 세지면서 시위 6개월 만에 첫 희생자도 발생했다. 4일 홍콩과학기술대생 차우츠록(周梓樂)은 시위 현장 인근에서 최루탄을 피하려다 주차장 건물 3층에서 2층으로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후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8일 숨졌다. 홍콩 경찰이 실탄을 발사한 이날 홍콩 시민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숨진 대학생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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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격 사건을 계기로 6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홍콩 시위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홍콩 현지 언론들은 보고 있다. 시민 총탄 공격 사실이 알려진 이날 오전부터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홍콩 학생과 노동계, 시민사회는 총파업(罷工), 동맹휴학(罷課), 철시(罷市) 등 이른바 ‘3파(罷)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시위가 격화 양상을 보이면서 홍콩증시는 급락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이날 2.62% 내린 26,926.55로 마감했다. 1% 정도 하락으로 출발해 갈수록 낙폭이 확대됐다. 다른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떨어졌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83%, 대만 자취안지수는 1.31%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0.26%, 코스피지수는 0.61% 떨어졌다. 홍콩 금융가는 앞으로 시위가 격렬해지고 중국이 홍콩에 병력을 투입하는 등 ‘강 대 강’ 대치 양상이 빚어지면 홍콩 및 아시아 금융시장이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아시아 외환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원·달러 환율은 9원30전 뛰어 달러당 1166원80전에 거래를 마쳤다. 8월 5일(17원30전) 후 최대폭으로 올랐다. 다른 아시아 주요국 통화도 일제히 달러 대비 약세를 나타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날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를 6.9위안대로 고시했으나 장중 달러당 7위안대로 올랐다.

미·중 무역협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달 1단계 합의를 이뤄 조만간 두 정상의 서명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중국은 홍콩 이슈에 대한 미국의 언급을 내정 간섭이라고 여기고 있다. 미·중이 홍콩 사태를 두고 충돌하면 세계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심은지/정연일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