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대중화' 꽃피운 서울옥션…한국미술 판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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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서울옥션
그림거래 끊겼던 외환위기 때 탄생
일반인 고정관념 깬 경매문화 선도
코스닥 상장까지…K아트 위상 높여
그림거래 끊겼던 외환위기 때 탄생
일반인 고정관념 깬 경매문화 선도
코스닥 상장까지…K아트 위상 높여
“국내외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면서 미술사업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연간 4000억원 규모의 한국 미술시장은 미국(28조원) 등 선진국에 비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죠. 규제보다는 보호장치가 필요한데도 정부가 과세를 강화한다니 안타깝습니다.”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을 이끌고 있는 이호재 회장은 “시장이 최소 2조원은 돼야 과세 효과도 있고 10만여 명에 달하는 작가들 역시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다”며 “시장을 먼저 키우는 성장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경매문화 불모지에서 온몸으로 미술경매시장을 개척해냈다. 그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옥션은 올 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8층짜리 신사옥(강남센터)을 개관해 본격적으로 ‘강남 시대’를 열었다. ‘서울옥션 제2 도약’의 상징인 강남센터는 미술품 경매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창의적인 미술 콘텐츠를 바탕으로 애호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만족시키는 복합공간이다. 강남권 고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기존 평창동 본사의 약점도 보완했다. 불황기에 구조조정보다 구조혁신으로 판을 더 키우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 회장은 “서울옥션은 미술시장이 가장 어려울 때 새로운 대안을 만들었다”며 “강남센터를 중심 축으로 국내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한국 미술문화를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미술시장 힘들 때 대안으로 등장
서울옥션은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탄생했다. 당시 미술시장은 그림 거래가 거의 끊기다시피했다. 가나아트센터를 운영하던 이 회장은 한계에 부딪힌 화랑 운영의 대안으로 경매를 택했다. 미술품 가격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립하고 그림 거래의 선진화를 이뤄내려는 목적이었다. 1998년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등장은 초토화된 시장에 그나마 작은 힘이 됐다. 첫 경매에서 근현대미술품과 고미술품 80여 점을 팔아 낙찰총액 3억원을 기록했다. 초라한 실적이었지만 미술품 대중화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서울옥션은 이후 그림 투자가 주식보다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꾸준히 성장했다. 미술품 경매는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미술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 불투명하던 그림 가격이 투명해지면서 ‘아트테크’ 열풍을 몰고 왔다. 2007년 전체 경매 낙찰액이 2000억원에 바짝 접근하는 등 경매시장은 커져 갔다. 서울옥션은 여세를 몰아 2008년 7월 ‘미술 기업’으로는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세계적으로도 소더비(미국 뉴욕), 신와(일본 오사카)에 이어 미술계에서 세 번째로 상장한 기업이 됐다. 국내 미술시장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계기였다.
홍콩 진출로 ‘미술 한류’ 개척
하지만 호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말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졌다.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고 미술시장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서울옥션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코스닥시장 상장과 함께 ‘미술 한류’ 개척의 전진기지로 홍콩에 법인을 세웠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장악한 홍콩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침 아시아 미술이 부상하면서 한국 미술품에도 세계 컬렉터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글로벌 미술시장과 연동되며 서울옥션 경매 낙찰액의 절반 이상이 홍콩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홍콩 경매 낙찰액은 648억원에 달했다. 초고가 작품도 잇달아 쏟아냈다. 작년 10월 김환기의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가 85억원에 팔려 국내 미술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3월에는 홍콩 센트럴에 있는 에이치퀸스 빌딩 11층에 330㎡ 규모의 상설전시장 ‘SA+’도 개관했다. 데이비드 즈위너, 페이스, 화이트 스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가 입주한 건물이어서 세계적인 컬렉터의 유치도 쉬웠다. 이 회장은 “그동안 홍콩 경매 때마다 하얏트호텔을 빌렸는데 평균 5억원 이상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지속성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며 “SA+를 통해 국내 갤러리와의 협업 전시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품 대중화에 앞장
이 회장은 ‘미술이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싶었다. 미술시장의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직장인이나 주부 등 일반인이 미술품을 즐기고 향유하는 게 중요했다. 2012년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판화 형태로 제작한 ‘프린트베이커리’를 선보였다. 에디션 브랜드인 프린트베이커리는 종이를 재료로 하는 판화와 달리 작품을 아크릴과 알루미늄 패널 사이에 넣고 압축해 찍어낸다. 참여 작가들이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한다. 그동안 모두 600여 종이 출시됐다. ‘사과 작가’ 윤병락(13종)을 비롯해 하태임(12종), 유선태(8종) 등의 작품 25%가 판매됐다.
2007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온라인 경매를 시작했다. 중저가 미술품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온라인 미술품 경매는 미술품 유통의 중심이 됐다. 서울옥션은 올해 자회사를 통해 프리미엄 렌털서비스 ‘storage 9’를 선보였고, 연 300억원 매출 목표로 온라인 상설 스토어도 열었다. 이 회장은 “사업 다각화와 신규 영역 개발을 통해 많은 사람이 그림을 곁에 두고 즐기는 시장을 만들 것”이라며 “미술품 가격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립 그리고 그림 거래의 선진화를 위해 국내외 자료를 통합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을 이끌고 있는 이호재 회장은 “시장이 최소 2조원은 돼야 과세 효과도 있고 10만여 명에 달하는 작가들 역시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다”며 “시장을 먼저 키우는 성장 드라이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경매문화 불모지에서 온몸으로 미술경매시장을 개척해냈다. 그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울옥션은 올 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8층짜리 신사옥(강남센터)을 개관해 본격적으로 ‘강남 시대’를 열었다. ‘서울옥션 제2 도약’의 상징인 강남센터는 미술품 경매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창의적인 미술 콘텐츠를 바탕으로 애호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만족시키는 복합공간이다. 강남권 고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기존 평창동 본사의 약점도 보완했다. 불황기에 구조조정보다 구조혁신으로 판을 더 키우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 회장은 “서울옥션은 미술시장이 가장 어려울 때 새로운 대안을 만들었다”며 “강남센터를 중심 축으로 국내 미술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한국 미술문화를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미술시장 힘들 때 대안으로 등장
서울옥션은 1997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탄생했다. 당시 미술시장은 그림 거래가 거의 끊기다시피했다. 가나아트센터를 운영하던 이 회장은 한계에 부딪힌 화랑 운영의 대안으로 경매를 택했다. 미술품 가격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립하고 그림 거래의 선진화를 이뤄내려는 목적이었다. 1998년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의 등장은 초토화된 시장에 그나마 작은 힘이 됐다. 첫 경매에서 근현대미술품과 고미술품 80여 점을 팔아 낙찰총액 3억원을 기록했다. 초라한 실적이었지만 미술품 대중화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서울옥션은 이후 그림 투자가 주식보다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꾸준히 성장했다. 미술품 경매는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미술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 수요가 엄청나게 늘었다. 불투명하던 그림 가격이 투명해지면서 ‘아트테크’ 열풍을 몰고 왔다. 2007년 전체 경매 낙찰액이 2000억원에 바짝 접근하는 등 경매시장은 커져 갔다. 서울옥션은 여세를 몰아 2008년 7월 ‘미술 기업’으로는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세계적으로도 소더비(미국 뉴욕), 신와(일본 오사카)에 이어 미술계에서 세 번째로 상장한 기업이 됐다. 국내 미술시장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인 계기였다.
홍콩 진출로 ‘미술 한류’ 개척
하지만 호황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말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졌다. 세계 경제가 꽁꽁 얼어붙고 미술시장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서울옥션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코스닥시장 상장과 함께 ‘미술 한류’ 개척의 전진기지로 홍콩에 법인을 세웠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장악한 홍콩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침 아시아 미술이 부상하면서 한국 미술품에도 세계 컬렉터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글로벌 미술시장과 연동되며 서울옥션 경매 낙찰액의 절반 이상이 홍콩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홍콩 경매 낙찰액은 648억원에 달했다. 초고가 작품도 잇달아 쏟아냈다. 작년 10월 김환기의 붉은색 전면점화 ‘3-II-72 #220’가 85억원에 팔려 국내 미술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3월에는 홍콩 센트럴에 있는 에이치퀸스 빌딩 11층에 330㎡ 규모의 상설전시장 ‘SA+’도 개관했다. 데이비드 즈위너, 페이스, 화이트 스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갤러리가 입주한 건물이어서 세계적인 컬렉터의 유치도 쉬웠다. 이 회장은 “그동안 홍콩 경매 때마다 하얏트호텔을 빌렸는데 평균 5억원 이상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지속성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며 “SA+를 통해 국내 갤러리와의 협업 전시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품 대중화에 앞장
이 회장은 ‘미술이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싶었다. 미술시장의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는 직장인이나 주부 등 일반인이 미술품을 즐기고 향유하는 게 중요했다. 2012년 유명 작가들의 그림을 판화 형태로 제작한 ‘프린트베이커리’를 선보였다. 에디션 브랜드인 프린트베이커리는 종이를 재료로 하는 판화와 달리 작품을 아크릴과 알루미늄 패널 사이에 넣고 압축해 찍어낸다. 참여 작가들이 고유번호(에디션)를 붙이고 사인도 한다. 그동안 모두 600여 종이 출시됐다. ‘사과 작가’ 윤병락(13종)을 비롯해 하태임(12종), 유선태(8종) 등의 작품 25%가 판매됐다.
2007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온라인 경매를 시작했다. 중저가 미술품의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온라인 미술품 경매는 미술품 유통의 중심이 됐다. 서울옥션은 올해 자회사를 통해 프리미엄 렌털서비스 ‘storage 9’를 선보였고, 연 300억원 매출 목표로 온라인 상설 스토어도 열었다. 이 회장은 “사업 다각화와 신규 영역 개발을 통해 많은 사람이 그림을 곁에 두고 즐기는 시장을 만들 것”이라며 “미술품 가격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립 그리고 그림 거래의 선진화를 위해 국내외 자료를 통합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