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죽어라 험지만 달린 한국 꼴찌, 22년만에 1등…"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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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WRC 도전 '22년史'
▽ 1996년 첫 도전 2003년까지 꼴찌만
▽ '절치부심' 복귀…죽어라 험지만 달려
▽ "고성능=고품질" 정의선의 투자 뚝심
▽ 1996년 첫 도전 2003년까지 꼴찌만
▽ '절치부심' 복귀…죽어라 험지만 달려
▽ "고성능=고품질" 정의선의 투자 뚝심
▽ 현대차 WRC 도전 하이라이트 영상
현대자동차가 한국팀 최초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대회 2019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가 알아주는 험지만 달린 꼴찌가 도전 22여년 만에 한국팀 최초 1등으로 당당히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세계의 높은 문턱에 좌절도 수없이 했지만, 재도전 끝에 세계 최고 명예의 레이싱대회 WRC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꼴찌도 전 세계 1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1996년 첫 도전…성적은 '꼴찌'
14일 현대차에 따르면 WRC 도전은 1996년 시작됐다. 현대차는 당시 영국의 레이싱 전문 회사 MSD와 손잡고 WRC 2부 리그인 F2 클래스에 첫 도전을 준비했다. F2 클래스는 전륜구동 기반 2리터 자연흡기 엔진으로 출전하는 대회다. 현대차는 티뷰론을 랠리카로 제작해 1997년 WRC F2 클래스 뉴질랜드 랠리에 시범 출전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현대차는 1998년 본격적으로 WRC F2 클래스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5위로 뒤에서 두 번째에 그쳤다. 재차 도전한 1999년 대회에서는 총 14라운드 가운데 5차례 우승을 거두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현대차는 이를 계기로 WRC 최고 클래스인 A8 클래스 도전에 나섰다. A8 클래스는 4륜구동 기반 2리터 터보 엔진으로 출전하는 대회다.
티뷰론을 대신해 베르나 기반 랠리카가 제작됐다. 베르나 랠리카는 1999년 11월 창원에서 개최된 포뮬러 쓰리(F-3) 대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2000년, 현대차는 마침내 포드, 푸조, 시트로엥, 미쯔비시, 스바루 등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WRC 최고 클래스에 참가했다. 결과는 완패였다. 현대차는 한 해 13번의 경주에서 단 한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2003년까지 4년 동안 총 52번의 경주가 열렸지만 현대차는 3위 이내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13번의 경주를 합산해 선정하는 종합 우승과의 거리도 매우 멀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투자해온 기간부터 달랐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도전과 실패를 겪었다면 경험이라도 쌓아야 하지만, 이조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차는 "경주용 랠리카 제작을 외부 전문업체에 맡겼는데, 연구소와의 협업이나 기술·노하우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랠리카 기술이 연구소로 전달되지 않으니 양산차로의 기술 이전도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차는 상처만 얻은 채로 WRC를 떠났다.
◇ '절치부심' 복귀…죽어라 험지만 달렸다
현대차는 2012년 WRC 복귀를 선언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당시 정 부회장은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개발 중인 차량으로 레이싱을 할 정도로 고성능 차에 관심이 많았다. 고성능 차량을 만드는 것이 품질로 직결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완성차 제조사들의 경우 새 엔진을 개발한 뒤 수 년에 걸쳐 점차 출력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품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된 뒤에야 성능을 높인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고성능 차량을 만든다는 것은 신뢰도가 뛰어난 차량을 만들 기술력 있다는 의미가 된다.
더군다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량 성능을 10% 줄이면 내구성을 비롯한 품질 신뢰도는 30% 증가하는 것으로 본다.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는 WRC에서 고성능 랠리카를 선보여 인정받는다면 그보다 성능이 낮춰지는 양산차에서는 품질 신뢰도를 크게 올릴 수 있다. 포뮬러 원(F1)이 서킷에서 속도 경쟁을 하는 대회라면 WRC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산간 도로·진흙탕·자갈밭·눈길 등 악조건을 가진 험지 도로를 달리는 대회다.
차량 성능과 내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전조차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F1은 경주용 차를 개발하지만 WRC는 양산차를 개조해 출전하기에 양산차에 기술을 이전하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 "고성능=고품질" 정의선의 뚝심
정 수석부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현대차는 그해 독일에서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을 설립하고 자체 기술로 승부에 나섰다. 201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i20 WRC 랠리카를 공개했고 2014년 WRC 개막전 몬테카를로 랠리에 참가하며 공식적으로 복귀했다.
절치부심한 현대차는 복귀전이던 2014년 경주에서 첫 우승에 성공했다. 3위 이내에 들어 시상대에 오른 것도 4번에 달했다. 시상대에 발도 붙이지 못하던 꼴찌가 화려하게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정의선 부회장은 BMW에서 고성능 브랜드 M 연구소장이던 알버트 비어만을 현대차로 영입했다. 그는 현대차에서 2015년부터 시험·고성능차 담당을 맡았고, 현대차의 WRC 성적은 급상승을 시작했다. 현대차는 2015년 0승을 기록하고 시상대에 4회 오르는 데 그쳤지만 2016년 2회 우승하고 시상대에 12회 올랐다. 2017년에는 4회 우승, 시상대 12회를 기록했다.
종합 성적에서도 현대차는 2015년 제조사 부문 3위를 기록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9년 380점을 획득하며 2위 도요타를 18점 차이로 제치고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처음으로 달성했다.
WRC 출전 경험은 i30 N TCR을 시작으로 고성능 라인업 'N'에 녹여냈다. 알버트 비어만 시험·고성능차 담당 사장은 지난해 벨로스터 N을 선보이며 "벨로스터 N은 현대차의 고성능 철학과 모터스포츠와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완성됐다"며 "기본차만으로도 강력한 주행능력과 밸런스라는 운전의 재미를 선사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토마스 쉬미에라 현대차 상품본부장(부사장)은 “현대차가 강력한 브랜드들과 경쟁해 WRC 진출 역사상 처음으로 제조사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며 “모터스포츠를 통해 발굴된 고성능 기술들은 양산차 기술력을 높이는데도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앞으로도 적극적인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기술을 얻고 고객들에게 운전 즐거움 주는 차를 만들겠다”이라고 말했다.
김민성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세계의 높은 문턱에 좌절도 수없이 했지만, 재도전 끝에 세계 최고 명예의 레이싱대회 WRC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꼴찌도 전 세계 1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만 하다. ◇1996년 첫 도전…성적은 '꼴찌'
14일 현대차에 따르면 WRC 도전은 1996년 시작됐다. 현대차는 당시 영국의 레이싱 전문 회사 MSD와 손잡고 WRC 2부 리그인 F2 클래스에 첫 도전을 준비했다. F2 클래스는 전륜구동 기반 2리터 자연흡기 엔진으로 출전하는 대회다. 현대차는 티뷰론을 랠리카로 제작해 1997년 WRC F2 클래스 뉴질랜드 랠리에 시범 출전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현대차는 1998년 본격적으로 WRC F2 클래스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5위로 뒤에서 두 번째에 그쳤다. 재차 도전한 1999년 대회에서는 총 14라운드 가운데 5차례 우승을 거두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현대차는 이를 계기로 WRC 최고 클래스인 A8 클래스 도전에 나섰다. A8 클래스는 4륜구동 기반 2리터 터보 엔진으로 출전하는 대회다.
티뷰론을 대신해 베르나 기반 랠리카가 제작됐다. 베르나 랠리카는 1999년 11월 창원에서 개최된 포뮬러 쓰리(F-3) 대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2000년, 현대차는 마침내 포드, 푸조, 시트로엥, 미쯔비시, 스바루 등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WRC 최고 클래스에 참가했다. 결과는 완패였다. 현대차는 한 해 13번의 경주에서 단 한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2003년까지 4년 동안 총 52번의 경주가 열렸지만 현대차는 3위 이내를 기록한 적이 없었다. 13번의 경주를 합산해 선정하는 종합 우승과의 거리도 매우 멀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투자해온 기간부터 달랐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도전과 실패를 겪었다면 경험이라도 쌓아야 하지만, 이조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차는 "경주용 랠리카 제작을 외부 전문업체에 맡겼는데, 연구소와의 협업이나 기술·노하우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랠리카 기술이 연구소로 전달되지 않으니 양산차로의 기술 이전도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차는 상처만 얻은 채로 WRC를 떠났다.
◇ '절치부심' 복귀…죽어라 험지만 달렸다
현대차는 2012년 WRC 복귀를 선언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당시 정 부회장은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개발 중인 차량으로 레이싱을 할 정도로 고성능 차에 관심이 많았다. 고성능 차량을 만드는 것이 품질로 직결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완성차 제조사들의 경우 새 엔진을 개발한 뒤 수 년에 걸쳐 점차 출력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품에 대한 신뢰성이 확보된 뒤에야 성능을 높인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고성능 차량을 만든다는 것은 신뢰도가 뛰어난 차량을 만들 기술력 있다는 의미가 된다.
더군다나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량 성능을 10% 줄이면 내구성을 비롯한 품질 신뢰도는 30% 증가하는 것으로 본다.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는 WRC에서 고성능 랠리카를 선보여 인정받는다면 그보다 성능이 낮춰지는 양산차에서는 품질 신뢰도를 크게 올릴 수 있다. 포뮬러 원(F1)이 서킷에서 속도 경쟁을 하는 대회라면 WRC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산간 도로·진흙탕·자갈밭·눈길 등 악조건을 가진 험지 도로를 달리는 대회다.
차량 성능과 내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전조차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F1은 경주용 차를 개발하지만 WRC는 양산차를 개조해 출전하기에 양산차에 기술을 이전하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 "고성능=고품질" 정의선의 뚝심
정 수석부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현대차는 그해 독일에서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을 설립하고 자체 기술로 승부에 나섰다. 201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i20 WRC 랠리카를 공개했고 2014년 WRC 개막전 몬테카를로 랠리에 참가하며 공식적으로 복귀했다.
절치부심한 현대차는 복귀전이던 2014년 경주에서 첫 우승에 성공했다. 3위 이내에 들어 시상대에 오른 것도 4번에 달했다. 시상대에 발도 붙이지 못하던 꼴찌가 화려하게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정의선 부회장은 BMW에서 고성능 브랜드 M 연구소장이던 알버트 비어만을 현대차로 영입했다. 그는 현대차에서 2015년부터 시험·고성능차 담당을 맡았고, 현대차의 WRC 성적은 급상승을 시작했다. 현대차는 2015년 0승을 기록하고 시상대에 4회 오르는 데 그쳤지만 2016년 2회 우승하고 시상대에 12회 올랐다. 2017년에는 4회 우승, 시상대 12회를 기록했다.
종합 성적에서도 현대차는 2015년 제조사 부문 3위를 기록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19년 380점을 획득하며 2위 도요타를 18점 차이로 제치고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처음으로 달성했다.
WRC 출전 경험은 i30 N TCR을 시작으로 고성능 라인업 'N'에 녹여냈다. 알버트 비어만 시험·고성능차 담당 사장은 지난해 벨로스터 N을 선보이며 "벨로스터 N은 현대차의 고성능 철학과 모터스포츠와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완성됐다"며 "기본차만으로도 강력한 주행능력과 밸런스라는 운전의 재미를 선사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토마스 쉬미에라 현대차 상품본부장(부사장)은 “현대차가 강력한 브랜드들과 경쟁해 WRC 진출 역사상 처음으로 제조사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며 “모터스포츠를 통해 발굴된 고성능 기술들은 양산차 기술력을 높이는데도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앞으로도 적극적인 모터스포츠 활동을 통해 기술을 얻고 고객들에게 운전 즐거움 주는 차를 만들겠다”이라고 말했다.
김민성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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