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만드는 규제 풀고, 기업가 정신 살려야 '성장 사다리' 이어져
국내 약 630만 개 기업 가운데 소기업(업종에 따라 매출 10억원 이하~120억원 이하)은 98.4%로 약 620만 개를 차지한다. 소상공인(93.7%)과 소기업(4.8%), 중기업(1.5%)을 뺀 중견·대기업 수는 전체의 0.1%(4801개)에 불과하다. 지난 20년간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선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중소→중견→대기업’의 성장 사다리가 끊겼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중견기업 정책 전문가들은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재건하기 위해 중소기업에만 쏠려 있는 정부 지원책을 스케일업(외형 키우기)하는 데 분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원 자금의 활용 여부도 꼼꼼히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정부 지원에만 매달려 실종된 기업가 정신을 개선하지 못하면 끊어진 사다리를 다시 이어붙일 수 없다고 경고했다.
'피터팬' 만드는 규제 풀고, 기업가 정신 살려야 '성장 사다리' 이어져
“기술력 토대로 정책자금 지원해야”

기업 성장의 사다리를 잇기 위해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건 현 정부의 기업 지원정책 방향이다. 지원 예산이 지나치게 중소기업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다.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원장은 “정부 정책자금이 대부분 초기 창업기업에 쏠려 있다”며 “중소·중견기업을 구분하는 대신 철저하게 기술력과 시장성을 토대로 잠재력을 평가한 뒤 ‘될성부른 떡잎’을 선별해 집중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퍼주기식 지원 후 사후관리가 소홀한 점도 문제로 꼽혔다. 이영주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본부장은 “부처나 기관별로 기업지원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하는 데에만 경쟁하지 말고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추적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정부 지원을 받은 벤처기업이 해외 진출에 소극적이라면 다음 지원 요건엔 해외 진출 실적을 포함하는 방식이다.

자유로운 성장환경 만들어야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는 순간 강화되는 각종 규제를 대폭 줄여야 중소기업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업 상속세 문제가 가장 큰 골머리였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1세대 중소·중견기업 창업자들은 최근 은퇴할 시점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 기업을 키우지 않는다”며 “50%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기업 덩치를 키우고 싶은 오너가 어디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기업상속공제제도의 실효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독일 수준(30%)으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는 즉시 없어지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100여 개인데 반대로 규제는 늘어난다”며 “중소기업의 성장 기피증을 조장하고, ‘피터팬 증후군’을 유인하는 원인부터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해야”

근본적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자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라 원장은 “한 대기업에 납품하면 국내외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에 납품할 수 없는 관행 때문에 대기업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중견기업은 대기업만 잘 잡으면 매출 걱정이 없었다. 독자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할 유인이 적었다는 얘기다.

기술 개발 대신 정부 지원에 매달리는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초라한 기업가 정신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조홍래 이노비즈협회장은 “혁신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특별한 혜택이나 정부 지원이 없어도 성장하는 게 기업”이라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식으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으려는 일부 기업인이 물을 흐린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상황에선 중견기업 지원책을 늘려도 정부 지원 기준에 부합하는 규모까지만 몸집을 키우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교수도 “국내 중견기업 상당수는 숙박 음식 식음료 건설 부동산 등 내수 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기술혁신과 글로벌화에 관심이 적다”며 “내수시장에서 소상공인과 경쟁하는 대신 해외로 눈을 돌려야 중견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심성미/나수지 기자 smshim@hankyung.com